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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들이 "아버지, 이거 꼭 보세요. 울 수도 있어요"라고 팝콘을 쥐여줬을 때, 저는 반신반의했습니다. 마블 영화에서 눈물이라니.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 제 옆에 앉은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잠시 앉아 있었습니다. 그 침묵이 모든 것을 말해줬습니다.
보름달 아래 세 스파이더맨이 착지한 순간, 내 인생의 세 챕터가 겹쳤다
토비 맥과이어, 앤드류 가필드, 톰 홀랜드. 서로 다른 평행우주(멀티버스, multiverse)에서 건너온 세 명이 보름달을 등지고 나란히 착지하는 그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이상하게도 슈퍼히어로의 웅장함보다 세 사람 각각의 눈빛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잃어본 사람의 눈, 구하지 못한 사람의 눈, 이제 막 처음으로 잃어보는 사람의 눈. 세 가지 눈빛이 한 화면 안에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엉뚱하게도 제 인생의 세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1984년 스물도 안 된 나이에 대기업 공채로 입사해 생산라인을 뛰어다니던 패기 넘치던 시절. 그리고 2004년, 가족 모두를 데리고 중국 웨이하이로 건너가 수백 명의 중국 직원들을 이끌면서 동시에 아버지 노릇을 해야 했던 15년. 그리고 지금, 환갑이 넘어 버스 핸들을 잡고 블로그를 시작한 이 시절. 세 스파이더맨이 서로를 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 짧은 컷이, 마치 제 세 시절이 서로를 위로하는 장면처럼 보였습니다.
존 왓츠(Jon Watts) 감독은 이 장면을 로우 앵글(low angle,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구도)로 잡아 영웅적 웅장함을 극대화하면서도, 직후의 클로즈업(close-up)에서 각자의 눈을 차례로 담아냅니다. 같은 고통을 겪어온 세 사람이 말없이 알아보는 그 순간을 위한 컷들이었습니다. 저는 그 연출 선택이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슈퍼히어로 영화인데 가장 강렬한 장면이 폭발이 아니라 눈빛 교환이라는 사실이, 이 영화가 단순한 오락 이상임을 증명합니다.
큰아들이 중국 로컬 초등학교에 처음 등교하던 날이 생각납니다. 중국어 한마디 못 하는 아이를 학교 앞에 내려주고 돌아서는데, 아이는 저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냥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 뒷모습이 어른보다 더 어른 같았습니다. 그날 저녁 밥상 앞에서 아이가 아무 말 없이 숟가락을 들던 눈빛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납니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을 낯선 세계에 혼자 밀어 넣어야 했던 적이 있습니까?

실패한 과거를 품은 채 뛰어드는 몸짓이 진짜 영웅의 증거다
이 영화에서 저를 가장 오래 붙잡은 것은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한 스파이더맨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세계에서 이미 그웬 스테이시를 잃었습니다. 구하려다 구하지 못했고, 그 실패를 몸에 새긴 채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MJ가 추락할 때, 그는 망설임 없이 뛰어듭니다. 가필드의 몸짓에는 과거의 실패와 현재의 구원이 동시에 담겨 있었고, 그가 MJ를 품에 안고 바닥에 닿는 순간 얼굴에 스친 복잡한 안도감은 어떤 대사보다 깊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장면을 보면 "저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젊을 때는 실패 없이 성공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다르게 봅니다. 실패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뛰어드는 것, 그게 훨씬 어렵고 훨씬 용감한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2013년 MRO 사업이 무너지고, 사기를 당하고, 주식 리딩에 속아 가진 것을 다 날렸을 때, 저는 한동안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또 실패할까 봐서가 아니라, 실패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무거워서였습니다.
쿠팡 배달 오토바이를 처음 탔을 때의 기억이 납니다. 50대 중반에 알록달록한 배달 조끼를 입고 골목을 누비는데, 지나가던 누군가가 저를 한 번 훑어보고 지나쳤습니다. 그 눈빛이 뭘 담고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 오히려 뭔가 가벼워졌습니다. 실패를 숨기는 데 쓰던 에너지를 더 이상 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가필드의 스파이더맨이 과거의 실패를 감추지 않고 그대로 안고 뛰어드는 것처럼, 저도 그냥 뛰어드는 쪽을 택했습니다. 당신은 실패를 알면서도 다시 뛰어든 적이 있습니까?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합전산망 기준으로 이 영화는 국내에서 약 763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링크) 글로벌로는 약 19억 달러(한화 약 2조 5천억 원)의 흥행 수익을 기록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장 산업의 회복을 상징하는 작품이 됐습니다.(출처: Box Office Mojo, 링크)

기억을 지워야 끝나는 이야기가 남긴 질문, 당신은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가
영화의 클라이맥스(climax)는 단순한 빌런(villain) 격파가 아닙니다. 피터는 세상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 자신을 지우는 것을 선택합니다. MJ도, 네드도, 심지어 행복했던 모든 순간도 타인의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피터만 혼자 기억합니다. 이 결말은 히어로 영화의 관습적인 해피엔딩(happy ending)을 정면으로 거부합니다. 대신 감독은 묻습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느냐고.
조명 설계가 이 주제를 조용히 받쳐줍니다. 빌런들과의 전투 장면은 차갑고 강한 파란빛과 초록빛이 교차하며 혼돈을 표현하는 반면, 메이가 피터에게 마지막 말을 건네는 장면은 따뜻한 황금빛 가로등 불빛 하나로만 처리됩니다. 그 빛은 어린 시절의 집처럼 따뜻하지만,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동시에 암시하는 미장센(mise-en-scène, 화면 구성의 모든 시각적 요소)이었습니다.
배우자가 1999년 위암 진단을 받았을 때를 떠올립니다. 수술 날 새벽, 병원 복도 끝 의자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 무언가를 포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지금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내 욕심의 어떤 부분을 내려놓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배우자는 완치됐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제 삶은 실제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피터가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하는 그 장면에서 저는 그 새벽 복도가 생겼습니다.
마이클 자키노(Michael Giacchino)의 음악은 이 정서를 정확하게 따라갑니다. 세 스파이더맨이 함께 빌런들을 상대하는 장면에서는 이전 시리즈의 테마를 교차 배치(크로스오버, crossover)해 팬들의 감정을 겹겹이 쌓아 올리고, 피터가 홀로 새 출발을 선택하는 엔딩에서는 그 모든 테마를 하나씩 걷어내며 결국 고요함으로 마무리합니다. 음악이 줄거리의 요약이 아니라 감정의 해설로 기능한 드문 사례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세 스파이더맨이 함께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습니다. 팬들이 기다려온 재회 장면에 비해 함께 활약하는 비중이 얇게 배분된 점은 분명히 아쉽습니다. 또 멀티버스 설정을 도입하면서 발생하는 논리적 허점 몇 가지는 영화적 재미에 집중하다 보면 넘어가게 되지만, 꼼꼼한 시청자에게는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추천합니다. 특히 삶에서 한 번 이상 크게 실패해 본 분들, 소중한 것을 잃어본 분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두렵지만 멈출 수도 없는 분들께. 60대에 블로그를 시작하고, 매일 버스 핸들을 잡으며 내일을 만들어가는 저 같은 사람에게, 세 스파이더맨의 착지는 단순한 영화 속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실패한 과거도 현재의 나와 함께 착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기억을 안고 착지를 준비하고 계신가요? 혹은 어떤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려 하시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이야기를 나누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 (5/5)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