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처음엔 기대를 접고 극장 의자에 앉았습니다. 게임 원작 영화가 성공한 사례가 손에 꼽힐 만큼 드물었고, 개봉 전부터 평론가들의 혹평이 줄을 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1980년대 오락실 소년이었던 제가 어느새 중년이 되어 극장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그 순간 새삼스럽게 와닿았기 때문입니다.
추억, 40년을 건너온 8비트의 냄새
1984년, 저는 국내 대기업에 갓 입사한 스물몇 살이었습니다. 당시 저녁시간이 되면 동료들과 우르르 오락실로 몰려가 마리오를 붙잡고 동전을 쏟아부었습니다. 8비트(bit) 그래픽이란 한 화면을 구성하는 색상과 도형을 256개 이하의 단위로 표현하는 초기 디지털 영상 방식인데, 그 투박한 픽셀 덩어리 안에 우리는 꽤 진지하게 빠져들었습니다. 점프 타이밍 하나에 희비가 갈렸고, 다음 스테이지 BGM(배경음악, Background Music)이 바뀌는 순간마다 괜히 어깨가 으쓱했습니다.
이후 중국 주재원으로 7년을 보내면서도 닌텐도 마리오의 열기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는 걸 직접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상하이 전자상가 골목에서도, 베이징 학생들의 기숙사 방에서도 마리오 캐릭터는 어디서든 반갑게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게임 하나가 언어도 문화도 넘는다는 게 그때 처음 실감 났습니다.
그 기억들이 극장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왔습니다. 영화는 뉴욕의 평범한 배관공 형제 마리오와 루이지가 초록색 파이프에 빨려 들어가면서 시작됩니다. 설정 자체는 단순하지만, 프레임(frame :화면 한 장 한 장을 구성하는 정지 이미지 단위) 마다 1985년 원작 게임의 지형과 구조물이 정교하게 재현되어 있어서 게임 팬이라면 멈추고 싶어질 순간이 끊이지 않습니다. 일루미네이션 스튜디오와 닌텐도가 협업하면서 미야모토 시게루가 직접 제작에 참여한 덕분에 원작의 질감이 단순한 차용이 아닌 존중의 형태로 살아 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동심, 감독이 연출한 감정의 설계
애런 호바스와 마이클 제레닉 감독이 이 영화에서 가장 탁월하게 해낸 일은 스토리를 만든 게 아니라 감정을 설계한 것이라고 봅니다. 서사는 단출합니다. 동생을 구하러 가는 형. 그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 단순한 뼈대 위에 얹힌 연출 기법들이 관객의 감각을 아주 치밀하게 건드립니다.
마리오가 버섯왕국에서 처음 장애물 코스를 넘는 장면을 보십시오. 카메라는 측면 횡스크롤(horizontal scrolling: 캐릭터가 화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원작 게임의 시점 방식)을 고스란히 옮겨온 앵글을 유지하다가 특정 순간 갑자기 입체적인 원근감으로 전환합니다. 이 전환이 단순한 연출 묘기가 아니라 "너 지금 게임 속에 들어와 있어"라는 신호로 작동합니다. 시선이 바뀌는 그 찰나에 오케스트라 편곡이 폭발하듯 터지는데, 그 타이밍이 정확히 심장 한 곳을 누릅니다.
크리스 프랫의 마리오 목소리 연기는 초반에 다소 어색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저는 오히려 그 목소리가 가진 평범한 질감이 이 캐릭터에 잘 어울린다고 느꼈습니다. 영웅의 무게를 억지로 짊어지지 않는 보통 남자의 목소리. 잭 블랙이 연기한 쿠파는 반대로 압도적입니다. 웅장한 저음 위에서 허영과 집착이 교차하는 빌런 특유의 감정선을 목소리 하나로 표현해 냈는데, 특히 피치 공주를 향한 집착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쿠파의 목소리 음색이 미묘하게 갈라지는 부분은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안야 테일러조이의 피치 역시 단순한 구조물의 공주가 아닌, 자기 의지로 전쟁을 결정하는 인물로 표현되어 있어 기존 마리오 서사에서 가장 반가운 변화 중 하나였습니다.
색감 연출도 의도적입니다. 버섯왕국의 채도는 높고 선명한 반면, 쿠파의 다크랜드는 낮은 채도와 차가운 색온도(色溫度, color temperature : 빛의 따뜻하고 차가운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것)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그냥 예쁘다고 느끼겠지만, 이 영화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보신 분이라면 그 색의 대비가 단순한 미술 선택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그리고 잃어버렸던 것들
배우자와 나란히 앉아 있다가 오케스트라 BGM이 울려 퍼지는 순간,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둘 다 동시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전자기기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기술 분야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8비트 신시사이저(synthesizer — 전자 회로로 음색을 합성해 내는 전자 악기)로 만들어진 단순한 멜로디가 수십 명의 현악기와 관악기 위에 얹혀 이렇게 웅장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술과 시간이 쌓였을지 새삼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영화의 진짜 메시지는 마리오가 쿠파를 물리친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감독의 말대로 게임을 즐겼던 부모 세대와 처음 마리오를 접하는 아이들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영화를 목표로 했다지만, 저는 거기에 한 가지를 더 읽었습니다. 어른들이 살면서 합리적인 이유로 하나씩 포기해 온 것들, 그러니까 꿈이라고 부르기엔 작고 희망이라고 부르기엔 부끄러웠던 그 감각들을 92분 안에 돌려주려 했다는 것입니다.
나무위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2023) 항목에 따르면 이 영화는 전 세계 박스오피스 13억 6,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조 8,000억 원을 벌어들였습니다. 애니메이션 영화 역대 흥행 2위라는 수치입니다. 평론가 점수는 낮았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 관객이 1조 8,000억 원어치의 티켓을 직접 구매했다는 사실이, 어떤 별점 평균보다 더 정직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애니메이션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며 대중성과 작품성 두 측면 모두에서 공식 인정을 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다음 세대가 이 영화를 보고 처음 마리오를 알게 된다면, 그 아이들이 40년 후 어떤 극장에서 이 음악을 다시 듣게 될지 모릅니다. 지금 시내버스 핸들을 잡고 신호를 기다리다 문득 그 생각이 드는 날이 있습니다. 그 멜로디는 세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누군가의 심장을 정확히 찾아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