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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맨

    지난 7월, 쉬는 날 아침 일찍 혼자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아내는 요양보호사 시험 준비로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저는 슬그머니 집을 나섰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기대가 크지 않았습니다. 2013년 《맨 오브 스틸》을 봤을 때 너무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에 적잖이 실망했던 기억이 남아 있었거든요. 그런데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영화 리뷰도 소재가 된다는 걸 알게 됐고, 주변에서 "이번엔 진짜 다르다"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별다른 준비 없이 좌석에 앉았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를 이 글에서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

    흔들리는 눈빛이 신이 아닌 인간임을 증명한 순간

    데이비드 코런스웻이 연기한 클라크 켄트는 이전 슈퍼맨 배우들과 결이 다릅니다. 헨리 카빌이 '신에 가까운 완벽함'을 표현했다면, 코런스웻은 '상처받은 인간성'을 먼저 내보입니다. 렉스 루터에게 감금당하는 장면에서 그의 눈빛은 분노가 아닙니다. 혼란과 슬픔, 그리고 흔들리지 않으려 버티는 사람의 눈빛입니다. 억지로 다잡은 시선, 미세하게 떨리는 턱선  이 작은 디테일이 그를 신화 속 영웅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 만들어 줬습니다.

    몸짓도 마찬가지입니다. 슈퍼맨 복장을 입고 있을 때조차 어깨를 완전히 펴지 않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몸 자체가 움츠러드는 연기, 그 섬세함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데 크립토와 함께 달리는 장면에서는 처음으로 표정이 완전히 열립니다. 아이처럼 웃는 그 얼굴  모든 짐을 잠시 내려놓은 사람의 해방감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연기를 보면서 문득 2004년 겨울을 떠올렸습니다. 중국 산동성 청도로 첫 주재원 발령을 받았을 때입니다. 회사는 저를 현지 공장 관리책임자로 보냈고, 저는 가족을 데리고 낯선 땅으로 건너갔습니다. 한국에서는 나름 인정받는 생산관리 전문가였는데, 현장에서는 말도 제대로 안 통하고, 현지 직원들은 제 지시를 우회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밤마다 숙소 천장을 보며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코런스웻의 눈빛 연기가 그 시절의 제 표정과 겹쳐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니었을 겁니다.

    여기서 독자 여러분께 한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완벽한 영웅'이 보여주는 무결점의 카리스마와, '상처받았지만 버텨내는 인간'이 보여주는 흔들리는 눈빛 중 어느 쪽에 더 마음이 움직이십니까? 저는 이번 영화에서 처음으로 슈퍼맨에게 감정이입이 됐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코런스웻의 '약함을 숨기지 않는 연기'에 있었습니다.

    레이철 브로스나한의 로이스 레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슈퍼맨의 구원자가 되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옆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서 있습니다. 두 배우의 케미는 거창한 로맨스보다 '서로의 무게를 알아보는 동료' 같은 느낌이었고,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깊이 남았습니다.

    감금된 힘, 쓰러진 영웅이 내게 낯설지 않았던 이유

    제임스 건 감독의 연출 전략 중 가장 대담한 선택은 미디어스 레스(in media res, 이야기의 한가운데서 시작하는 기법)입니다. 슈퍼맨의 탄생을 설명하는 기원 이야기(origin story)를 자막 몇 줄로 처리하고, 영화는 이미 싸우고 있고 이미 상처받은 슈퍼맨에서 시작합니다. "당신은 이미 이 사람을 알고 있다, 이제 그의 내면을 보라"는 감독의 선언입니다.

    카메라워크도 의미심장합니다. 비행 장면에서도 웅장한 부감 샷(bird's-eye view shot,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촬영 방식)보다 얼굴 클로즈업이 자주 선택됩니다. 하늘을 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순간 그가 무엇을 느끼는지가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조명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렉스 루터의 공간은 차갑고 인위적인 백색 형광이 지배하고, 클라크의 회상 장면들은 황톳빛 계열의 웜 라이팅(warm lighting, 따뜻한 색온도 조명)으로 처리됩니다. 빛의 온도 하나로 선과 악, 인간성과 계산을 나누는 섬세함입니다.

    렉스 루터를 연기한 니콜라스 홀트는 광기보다 냉정함을 선택했습니다. 루터코드의 CEO라는 설정에 걸맞게, 그는 적대자라기보다 다른 논리를 가진 인간으로 보입니다. 슈퍼맨을 증오하는 게 아니라 지구의 자율성을 지키겠다는 나름의 신념으로 움직이는 캐릭터 이 설정이 영화를 단순한 선악 대결 구도에서 끌어올립니다.

    렉스 루터에게 감금되어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는 슈퍼맨의 장면은 오랫동안 눈에 남았습니다. 하늘을 날던 존재가 땅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그 이미지. 저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MRO 사업(Maintenance, Repair and Operations, 산업용 소모품 및 유지보수 자재 사업)을 시작하며 꽤 자신만만했는데, 사기 피해를 당하면서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10년 가까이 쌓아온 것들이 허물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쿠팡 배달을 하면서도, 배민 오토바이 위에서도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억누르며 페달을 밟았습니다.

    예전에는 그 시절이 그저 창피하고 숨기고 싶은 과거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달리 봅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것이고, 쓰러진 슈퍼맨의 눈빛이 이렇게까지 가슴을 파고들지도 않았겠지요. 여러분은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지금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실버 에이지 코믹스(Silver Age Comics, 1956~1970년대 미국 만화의 황금기로 밝고 낙관적인 영웅 이야기가 특징) 감성과 현대 VFX의 결합도 건의 의도적 선택입니다. 지나치게 어둡고 사실적인 슈퍼히어로 영화의 흐름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 거대 괴수가 등장하고 슈퍼독 크립토가 진지하게 활약하는 장면들 — 이것은 유치함이 아니라 순수함의 복원입니다.

    크립토와 함께 다시 일어선 자리에서 찾은 정체성

    영화의 핵심 갈등은 크립톤 친부모의 메시지입니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쳐온 슈퍼맨에게, 친부모는 '지구를 정복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정의를 위해 살아온 존재가 자신이 침략자의 씨앗일 수 있다는 사실 앞에 서는 장면 — 이것이 영화의 진짜 주제입니다. 정체성 위기(identity crisis, 자아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 혼란)를 다루는 방식이 단순히 히어로물의 드라마틱한 장치가 아니라, 살아온 이유 자체가 흔들리는 경험으로 그려집니다.

    그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한 방울 흘렀습니다. 중국 청도에서 처음 몇 년을 버티고 나니 이번엔 아이들 교육 문제가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두 아들을 중국 로컬학교에 보낸다는 결정은 주변에서 "왜 굳이?"라는 시선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중국어 수업에 울면서 돌아오던 날, 저는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한 게 맞나' 하고 내내 자책했습니다. 아이들 편에서 보면 저는 낯선 땅으로 데려온 존재였고, 어쩌면 가족의 안정을 해친 존재였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 혼란이 슈퍼맨의 그것과 겹쳐 보였습니다. 하지만 두 아들은 결국 그 경험으로 성장했고,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슈퍼맨이 다시 일어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건 슈퍼독 크립토입니다. 복잡한 대사도, 영웅적인 조언도 없이 그냥 곁에 있는 존재  그것이 슈퍼맨을 일으킵니다. 저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었습니다. 사기 피해로 바닥을 치던 시절, 아내는 제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1999년 위암 수술을 이겨낸 사람이 아무 소리 없이 새벽 도시락을 싸줬습니다. 그 침묵이 크립토의 존재감과 닮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영화는 과연 정체성 혼란을 완전히 해소해 줍니까? 여기서 독자분들께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영화는 그 답을 선명하게 주지 않습니다. 슈퍼맨이 내린 결론은 단순합니다. "나는 내가 선택한 행동으로 규정된다." 크립톤의 부모가 무슨 메시지를 남겼든, 지금 내가 누군가를 구하기로 선택하는 것이 내 정체성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결말이 너무 간단해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60대 초반이 된 지금, 그 단순한 문장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출신이 아니라 선택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 — 그 진리를 히어로 영화가 담담하게 건네줬습니다.

    영화를 나오면서 저는 한동안 로비에 서 있었습니다. 슈퍼맨이라는 존재를 이렇게까지 내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솔직히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렉스 루터의 악당 서사가 다소 성긴 편이고, 크립톤 친부모의 메시지가 드라마틱하게 공개되는 방식은 조금 급박하게 느껴졌습니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조연 캐릭터들의 동기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점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후반부 액션이 쏟아지는 구간에서 감정의 여운보다 스펙터클 처리에 치우친 편집도 눈에 걸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슈퍼히어로를 다시 '인간의 이야기'로 돌려놓은 작품입니다. 쓰러지고 일어서는 것, 정체성의 혼란을 통과해 스스로를 선택하는 것 그 주제는 60대 버스 운전기사에게도, 30대 직장인에게도, 무언가를 잃어본 모든 사람에게도 유효합니다.

    이 영화는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분은 물론, 삶의 어느 순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의심해 본 적 있는 모든 분께 권합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