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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2] 통쾌함 뒤에 남은 씁쓸함 (정의, 공의, 현실의 간극)

by 어성초님 2026. 6. 2.

 

베테랑2 영화 장면중에서

영화가 끝나면 정의가 실현됩니다. 현실도 그럴까요?

추석 연휴, 저는 아들 둘을 데리고 극장에 앉았습니다. 시내버스를 오래 몰다 보면 세상 돌아가는 게 눈에 잡힙니다. 취객, 시비꾼, 몸 불편한 어르신, 말 한마디 없이 승차하는 청년들. 저는 그 모든 사람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게 일입니다. 참는 것도 직업의 일부입니다. 그런 제가 스크린 앞에서 처음으로 주먹을 쥐었습니다. 서도철 형사가 악인의 멱살을 잡는 순간, 저는 그 손이 제 손인 것처럼 느꼈습니다.

영화는 어디서 시작하는가 — 연쇄살인이라는 장치

2024년 9월 13일 개봉한 베테랑 2는 류승완 감독이 9년 만에 다시 소환한 서도철(황정민)의 이야기입니다. 2015년 전작이 재벌 2세의 갑질과 권력형 비리를 정면으로 겨냥했다면, 이번엔 연쇄살인범이라는 전혀 다른 결의 악과 맞붙습니다. 한 교수의 죽음이 실마리가 되어 이전 살인들과의 연결고리가 드러나고, 범인은 오히려 다음 피해자를 예고하는 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하며 수사팀을 조롱합니다. 118분 내내 쫓고 쫓기는 구조입니다.

미장센(mise-en-scène), 즉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 요소를 조율하는 방식에서 류승완 감독의 손맛이 납니다. 범인이 공개 영상으로 세상을 공포에 몰아넣는 장면은 단순한 스릴러 문법이 아니라, SNS와 알고리즘이 공포를 증폭시키는 현재의 미디어 환경을 꽤 날카롭게 반영한 설정입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시대 악의 모습은 숨지 않는다"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연출 의도였다는 걸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관객수 739만 명, 그리고 제77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 초청이라는 성과는 이 영화가 단순한 상업 오락에 머물지 않는다는 방증입니다. (출처: 씨네 21)

주인공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서도철은 가족도 뒤로 한 채 범죄와 싸웁니다. 정의감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하기엔 너무 많은 걸 내어줍니다. 저는 그 선택이 신념보다는 중독에 가깝다고 읽었습니다. 불의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체질. 그 체질이 그를 형사로 만들었고, 동시에 그를 지치게 만듭니다.

연기와 캐릭터 — 황정민과 정해인 사이의 세대 간 긴장

🎭 황정민은 이 영화에서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인물이 처음과 끝에서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거의 보여주지 않습니다. 서도철은 9년 전과 동일한 사람입니다. 그게 오히려 설득력이 있습니다. 진짜 베테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닳아 있지만 무너지지 않습니다. 황정민은 말보다 눈으로 그 피로를 표현합니다. 과하지 않은데 묵직한, 그 균형이 이 배우의 진짜 기량입니다.

정해인이 연기한 박선우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인물입니다. 신세대 형사, 세련된 외모, 그러나 내부에 뭔가 균열이 있습니다.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 즉 이야기를 이끄는 주인공 역할을 황정민과 나눠 갖는 구조가 이번 편의 핵심 변화입니다. 두 사람의 갈등과 신뢰 형성 과정은 영화의 감정선을 받치는 기둥입니다. 나라면 어땠을까요? 저보다 젊고 능력 있는 동료가 제 방식을 의심한다면, 솔직히 불쾌하겠지요. 그러나 서도철은 그 긴장을 밀어내지 않습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제 큰아들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장윤주의 봉 형사는 팀의 공기를 바꾸는 인물입니다. 오달수, 허준호, 권해효는 저마다 역할 이상을 합니다. 앙상블 캐스팅이 과하지 않게 어우러졌고, 그 결이 전작의 팀워크 감성을 이어받습니다.

영화가 건드린 것 — 정의라는 단어의 무게

💡 저는 심리상담을 공부하면서 억울함의 독성을 배웠습니다. 인지 왜곡(cognitive distortion), 다시 말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굴절시켜 해석하는 사고 패턴이 오래된 억울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혼자 삭히는 분노는 몸을 먼저 망가뜨립니다.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10년 넘게 끌고 온 사기 피해의 무게가 허리와 혈압과 수면을 야금야금 갉아먹었습니다. 형사들에게 호소해도 "증거 부족", "민사로 해결하라"는 말만 돌아왔습니다. 그 순간마다 저는 서도철 같은 사람이 내 편에 한 명만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저에게 단순한 오락이 아니었습니다. 120분 동안 묵은 분노를 대신 풀어주는 카타르시스였고, 동시에 씁쓸한 거울이었습니다. 현실의 악인들은 영화처럼 통쾌하게 잡히지 않습니다. 제도는 느리고, 증거는 부족하고, 서도철은 현실에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신앙인입니다. 2024년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힘으로 담배를 끊었습니다. 공의(公義), 즉 완전하고 편파 없는 정의는 결국 하나님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현실의 무기력함을 덮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베테랑 2가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는 바로 그 지점입니다. 제도가 선해야 하고, 그 제도를 지키는 사람이 더 많아야 한다는 것. 서도철 혼자의 정의가 아니라, 시스템 전체가 그 방향을 향해야 한다는 것. 영화는 통쾌하게 끝났지만, 저는 극장을 나오며 그 뒷맛을 오래 씹었습니다. (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아들들이 박수를 치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 박수가 단순한 액션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는 걸, 저는 압니다. 오래 참아온 것들에 대한 대리 해방이었습니다.

추천 대상: 불의 앞에서 꾹꾹 눌러온 감정을 가진 분, 정의라는 단어를 아직 포기하지 않은 분, 그리고 오늘도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 모든 분.

아직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 필요한 분이라면, 이 영화가 그 말을 대신해 줄 것입니다.

참고: https://cine21.com/movie/info/?movie_id=6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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