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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새벽 운전대 위에서 마주한 나 자신 — 범죄와의 전쟁

by 어성초님 2026. 5. 27.

범죄와의 전쟁 화려한 시작

악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는 영화라면, 우리는 그냥 구경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평범한 사람이 나쁜 짓을 "당연히" 하게 되는 영화라면? 그건 구경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윤종빈 감독의 2012년작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처음 봤을 때, 저는 화면 속 최익현을 손가락질하다가 어느 순간 그 손가락이 저를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게 이 영화가 무서운

영화는 1982년 부산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세관 공무원 최익현(최민식)은 뇌물 한 봉투에 흔들려 조직폭력배와 손을 잡고, 점점 권력의 중심부로 파고들다가 노태우 정권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와 함께 모든 게 무너지는 걸 지켜봐야 합니다. 하정우가 연기한 조직의 실세 최형배, 마동석이 연기한 장석구가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의 파도를 타다 부서지는 과정이 약 10년의 시간 위에 촘촘하게 펼쳐집니다. 줄거리만 보면 전형적인 갱스터 무비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스크린 앞에 앉으면 전혀 다른 감각이 밀려옵니다.

"새벽 운전대 위"에서 마주한 나 자신

2019년 귀국 이후, 저는 서울 시내버스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새벽 첫차를 몰고 나가면 도시는 아직 어둡고, 정류장엔 아무도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 저는 이런저런 장면들을 다시 떠올리곤 했는데, 〈범죄와의 전쟁〉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1982년이면 제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내딛던 시절입니다. 2년 뒤인 1984년, 국내 대기업에 입사했을 때 선배들은 "위에서 하라면 해야지"라고 했고, 저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최익현이 처음 뇌물 봉투를 받아 드는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그게 얼마나 익숙한 감각인지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냥, 그 자리에 있었고, 분위기가 그랬고, 거절할 이유를 딱히 못 찾은 것뿐입니다.

윤종빈 감독은 이 영화에서 핸드헬드(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찍는 기법으로, 화면이 미세하게 흔들려 현장감과 인물의 불안감을 동시에 전달합니다) 촬영과 정적인 롱테이크(cut 없이 한 장면을 길게 이어가는 기법으로, 인물의 감정 변화를 배우 스스로 채워가게 합니다)를 번갈아 씁니다. 흔들리는 카메라는 최익현의 내면 불안을, 긴 정지 화면은 그가 스스로를 설득하는 시간을 표현합니다. 이 두 가지 기법의 조합이 인물을 단죄하지 않고 관찰하게 만드는 핵심입니다.

저는 그 연출 방식이 처음에는 불편했습니다. 빨리 이 인간이 잘못됐다고 선언해줬으면 했는데, 카메라는 끝까지 중립의 거리를 유지합니다. 악인을 심판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영화.오히려 그 태도가 더 무섭습니다. 새벽 운전대를 잡은 채 텅 빈 도로를 달리다 보면, 그 침묵이 바로 이 영화의 시선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판단 없이 그냥 나를 바라보는 눈. 저는 그게 때로 가장 무거운 시선이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나라면 그 자리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모름이 이 영화의 진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고독은 도망칠 수 없을 때 가장 솔직해진다

2004년, 저는 중국 주재원으로 파견됐습니다. 베이징과 상하이를 오가며 8년을 보냈고, 2013년부터는 직접 MRO 사업을 꾸렸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혼자 밥을 먹고, 누가 어느 라인인지 파악하며 웃는 얼굴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했던 그 시절. 그건 고독이었지만, 도망칠 수 없는 종류의 고독이었습니다.

최익현이 부산을 떠나 서울로, 조직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동하는 과정을 보면서 저는 그 감각을 다시 꺼냈습니다. 낯선 도시, 낯선 사람들, 그럼에도 웃으면서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이방인의 감각. 영화 속 부산 사투리와 서울 언어가 충돌하는 장면들, 조직의 언어와 공권력의 언어가 섞이는 회식 자리들이 저는 유독 사실적으로 보였습니다. 그건 고증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문제였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의 미장센(화면 안에 배치된 인물·소품·조명·공간의 총체적 구성을 뜻합니다)은 철저하게 인물의 고립을 강조합니다. 최익현이 권력의 정점에 가까워질수록 그가 앉는 공간은 더 넓고 더 비어가고, 그를 향한 사람들의 눈빛은 더 공손해지지만 더 멀어집니다. 이 역설을 달파란 음악감독의 70~80년대 복고풍 사운드가 아이러니하게 감쌉니다. 화려한 멜로디 아래서 인물이 무너지는 구조, 그건 그 시대를 실제로 통과한 사람에게는 단순한 연출 이상의 감각으로 도달합니다.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면서 인간 심리를 들여다봤던 저로서는, 이 영화의 인물 묘사가 교과서보다 훨씬 솔직하다고 느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상황적 귀인(situational attribution)이라고 부릅니다. 나쁜 행동의 원인을 개인의 성격이 아닌 상황과 구조에서 찾는 관점입니다. 윤종빈 감독은 이론으로 설명하는 대신, 카메라로 그걸 보여줍니다.

다만 솔직히 아쉬운 지점도 있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구조적 부패보다 개인의 배신 드라마로 무게중심이 쏠리는 흐름이 보입니다. 시대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해 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 중국에서 제도와 인맥이 결탁한 구조를 직접 겪어본 입장에서, 그 거대한 그물망을 영화가 충분히 건드리지 못하고 지나쳤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최익현 한 사람의 이야기로 마무리되기엔, 그 시대가 너무 넓었습니다.

주인공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저는 그가 탐욕스러워서가 아니라, 멈추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계에 떠밀리고, 분위기에 실려, 어느 순간 돌아갈 길이 없어진 것입니다. 저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가는 언제나 혼자 치렀습니다.

"내려놓음"이 가장 강한 선택이 되는 순간

2019년 귀국 이후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저는 내 삶의 몇 가지 장면들을 다르게 보게 됐습니다. 욕망 때문에 흔들렸던 시간들, 관계 때문에 눈을 감았던 선택들. 그것을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일보다, 조용히 내려놓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걸 배웠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국면에서 최익현은 조직도, 권력도, 관계도 하나씩 잃어갑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비극적이기만 하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쥐고 있던 것을 놓는 순간, 인물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의 얼굴을 합니다. 최민식의 연기가 그걸 말이 아니라 눈빛으로 전달합니다. 대사 한 줄 없이, 눈빛과 표정만으로 계산과 두려움과 체념을 동시에 표현하는 장면들. 그건 어떤 설명보다 강력합니다.

클로즈업(인물의 얼굴을 화면 가득 채우는 촬영 기법으로, 말 없이도 감정을 전달합니다)이 길어지는 후반부 장면들에서 저는 오래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살면서 웃으면서 버텨야 했던 시간들을 알기에, 그 연기가 더 깊이 박혔습니다. 2012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이 최민식에게 간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마동석이 장석구로 보여준 투박하고 묵직한 존재감, 말 대신 몸으로 관계를 표현하는 그 방식도 2012년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진짜 패배는 조직이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데 성공해 버린 것, 그게 가장 조용하고 가장 깊은 패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려놓음이 약함이 아니라 가장 강한 선택이 되는 순간은,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이지 않아도 될 때입니다. 그 지점을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라는 외피 안에 조용히 숨겨두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다음 분들께 권합니다.

-1980~90년대를 실제로 통과해본 분, 그 시절의 공기를 다시 맡고 싶은 분
-나쁜 선택을 나쁜 사람만 한다고 생각하셨던 분
-최민식 배우의 연기가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분
-한국 사회의 구조와 인간 심리를 동시에 들여다보고 싶은 분

화려하지 않고, 친절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정직합니다. 그리고 그 정직함이, 이 영화를 오래 남게 만듭니다.

참고: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 범죄와의 전쟁
한국영상자료원 — 한국영화사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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