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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드맨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 마이클 키튼 주연의 2014년 블랙 코미디 드라마로, 슈퍼히어로 역할로 전성기를 누렸던 한물간 배우가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재기를 꿈꾸며 현실과 환상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이야기다. 마이클 키튼의 자전적 무게감과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원테이크 촬영이 맞물려, 보는 내내 영화인지 다큐인지 구분이 흐릿해지는 독특한 체험을 선사한다.

    헬스장 러닝머신 위에서 처음 이 영화를 알게 됐습니다. 작년 늦가을, 퇴근 후 회사 헬스장에서 시속 8킬로로 달리다가 유튜브 영화 리뷰 채널에서 흘러나온 한 줄 설명에 손이 멈췄습니다. "한때 잘 나갔던 배우가 재기를 꿈꾼다." 속도를 줄이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날 밤 퇴근하자마자 찾아서 봤고, 영화가 끝난 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거울 속 환영이 짓누르는 재기의 욕망

    한때 슈퍼히어로 '버드맨'으로 정점을 찍었던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은 브로드웨이 연극 무대를 통해 배우로서 재기하려 합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버드맨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넌 이미 끝났어.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분장실 거울 앞에 앉은 리건이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이 장면에서, 마이클 키튼의 눈빛은 분노도 두려움도 아닌 무언가 더 복잡한 것을 담아냅니다. 부정하고 싶지만 반쯤은 믿고 싶은, 과거의 영광에 기대고 싶은 인간의 나약함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키튼은 실제로 1989년 팀 버튼의 《배트맨》으로 정점을 찍은 뒤 오랜 침묵 기를 보냈습니다. 그 공백의 무게가 스크린 어디에나 배어 있어서, 이건 연기가 아니라 고백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도를 걸을 때 약간 움츠러든 어깨, 그런데 무대에 올라서는 순간만큼은 등이 펴지는 그 미세한 차이. 대사 한 마디 없이 '무대만이 이 남자의 존재 이유'라는 사실을 몸으로 전달합니다. 당신은 살면서 그런 장소 하나쯤 있었습니까? 그 자리에서만 비로소 자신이 된다는 느낌을 받는 공간.

    저는 2019년 봄, 중국 산동성에서 7년간 운영하던 MRO 사업을 정리하고 빈손으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짐을 풀던 날 밤 아내가 먼저 잠든 뒤 거실에 혼자 앉아 있었는데,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계속 속삭였습니다. "너, 이제 끝난 거야." 사기를 당했고, 주식 리딩에 속아 남은 돈마저 녹였습니다. 2004년 대기업 주재원으로 중국에 처음 발을 디딜 때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었고, 15년을 버텨온 시간이 통장 잔고 하나로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게 제 버드맨이었습니다. 리건을 짓누르는 환영처럼, 저를 짓누르는 그 목소리.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한 마이크 섀이너는 대조적입니다. 무대 위에서만 진짜인 배우, 현실에서는 통제 불능이지만 무대에서만큼은 완벽한 이 남자를 보면서, 중국에서 함께 일했던 파트너 한 명이 떠올랐습니다. 현장에서는 천재적이었지만 계약서 한 장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던 그 사람. 능력과 책임이 반드시 함께 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배웠습니다.

    원테이크 연출이 만들어낸 숨막히는 현실감

    《버드맨》의 가장 큰 기술적 성취는 마치 한 번의 컷도 없이 찍은 것처럼 보이는 원테이크(one-take) 방식입니다. 실제로는 수십 개의 롱테이크(long take, 끊김 없이 길게 이어지는 촬영 방식)를 정교하게 이어 붙였지만, 관객은 119분 내내 편집의 흔적을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했습니다. (출처: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링크)

    카메라는 배우들을 따라 브로드웨이 극장 복도를 헤집고 다닙니다. 분장실에서 무대로, 무대에서 옥상으로, 옥상에서 다시 골목으로. 이 흐름이 끊기지 않으니 관객은 호흡할 틈이 없습니다. 리건이 느끼는 압박과 혼돈이 그대로 스크린 밖으로 전달됩니다. 저는 이 연출 선택이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주제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극 무대란 원래 한 번 시작되면 멈출 수 없는 것이고, 리건의 재기 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단할 수 없는 흐름, 돌아올 수 없는 선택.

    배경음악도 특이합니다. 드럼 솔로(drum solo, 타악기만으로 연주하는 독주 방식)가 거의 전편에 걸쳐 깔립니다. 처음엔 어딘가 어색하고 불안정하게 느껴지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리듬이 리건의 심장 박동처럼 들립니다. 빠르게 쳐대는 드럼 소리와 카메라의 흔들림이 포개질 때, 이 남자가 얼마나 벼랑 끝에 서 있는지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 영화가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것은 단순한 평단의 호감이 아닙니다. (출처: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링크) 이냐리투 감독은 기술과 이야기를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형식 자체가 내용이 되는 영화, 그것이 《버드맨》이 지금도 회자되는 이유입니다.

    저는 예전엔 이런 영화가 좀 불편했습니다. 이야기가 명확하지 않고 계속 흔들리는 느낌이어서, 극장에서 봤다면 중간에 졸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게 봅니다. 이 불편함이 의도된 것이고, 그 불편함이 곧 리건의 내면 상태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나이가 들면 불확실한 것들을 좀 더 견딜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빈손으로 돌아온 남자가 무대에서 배운 것

    영화에서 가장 잔인하게 진실을 말하는 인물은 딸 샘(엠마 스톤)입니다. "아빠는 SNS도 없잖아요. 아무도 아빠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라요." 리건의 얼굴에 스치는 그 표정,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 표정을 저는 오래 바라봤습니다. 자식한테 그런 말을 들을 때의 아픔은,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것입니다.

    저도 그 말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2025년 5월, 이백 강의를 듣고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까지 저는 디지털 세계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SNS도 없고, 블로그도 없고,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60대. 큰아들이 경찰공무원이 되고, 작은아들이 직장을 잡는 동안 저는 새벽 5시에 버스 운전대를 잡는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엔 자존심이 많이 상했습니다. 중국에서 공장 수백 명을 관리하던 사람이 버스 기사라니. 하지만 매일 아침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새벽 5시 20분 첫차에 오르는 어르신, 교복을 입고 아직 덜 깬 눈으로 창밖을 보는 고등학생, 아기를 안고 자리를 찾는 젊은 엄마. 이 사람들 모두 각자의 무대에서 오늘을 버티고 있었습니다. 제가 운전하는 버스가 그 무대의 일부였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생겼습니다.

    2024년 10월부터 회사 헬스장에서 매일 1시간 이상 러닝과 턱걸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허리디스크로 오래 고생했는데, 꾸준히 했더니 허리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2025년 12월 21일에는 금연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힘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이 모든 것이 리건이 무대에 서기 위해 분장실 거울 앞에서 버텼던 것과 같은 종류의 일이라고,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리건이 결국 무대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 결말이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이 글에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선택을 하기까지 버텨온 시간 자체가 이미 무언가였다는 것. 보고 나서 한참 동안 그 생각을 했습니다.

    ★★★★★ (5/5)

    이 영화는 50대 이상, 한 번 크게 무너진 적 있는 분, 재기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품고 사는 분께 특히 권합니다. 화려한 액션도 없고 깔끔한 해피엔딩도 없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면 이상하게 힘이 납니다. 흔들리면서도 무대 위에 서는 것, 그것 자체가 용기라는 걸 이 영화는 119분 동안 쉬지 않고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재기와 자존감 사이에서 고민 중인 분
      • 연출 기법과 영화 언어에 관심 있는 분
      • 화려한 과거와 초라한 현재 사이에서 흔들려본 적 있는 분

    ❓ 자주 묻는 질문

    Q. 버드맨 결말 뜻이 뭔가요? 리건은 죽은 건가요?
    A. 영화의 결말은 의도적으로 열려 있습니다. 리건이 병원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진 뒤, 딸 샘이 창밖을 보며 하늘을 향해 미소를 짓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이는 리건이 실제로 날아올랐다는 환상적 해석, 혹은 마침내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했다는 상징적 해석 모두 가능합니다. 이냐리투 감독은 명확한 정답을 주지 않는데, 그것이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와 맞닿아 있습니다. 정답보다 질문이 더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

    Q. 버드맨 원테이크 촬영이 실제인가요?
    A. 완전한 원테이크는 아닙니다. 수십 개의 롱테이크를 정교한 디지털 편집 기술로 이어 붙여 끊김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가 이 기술적 성취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했으며, 현장 배우들은 마치 연극 공연처럼 긴 호흡으로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촬영 준비에만 수개월이 걸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Q. 버드맨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직접적인 실화 기반은 아닙니다. 다만 주연 마이클 키튼이 실제로 배트맨 시리즈 이후 오랜 공백기를 겪었기 때문에, 리건 톰슨이라는 캐릭터와 키튼의 실제 이력이 겹치는 지점이 많아 자전적 색채가 짙게 읽힙니다. 이냐리투 감독은 이를 의도한 캐스팅이었다고 밝혔습니다.

    Q. 버드맨 러닝타임과 관람 난이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A. 러닝타임은 119분입니다. 관람 난이도는 중간 이상으로, 서사가 직선적이지 않고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기 때문에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흐름을 놓치기 쉽습니다. 대신 집중해서 보면 볼수록 디테일이 쌓이면서 두 번째 관람 때 새로운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는 영화입니다.

    🎬 함께 보면 좋은 영화

    • 관상 — 한 사람을 읽는 시선이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파수꾼」의 다중 시점 구조와 통한다. 같은 인물을 다르게 보는 경험을 두 영화에서 연달아하면 더 깊이 남는다.
    • 안시성 —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연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동막골과 마찬가지로 집단의 생존과 개인의 선택을 다룹니다. 스케일은 다르지만 "지켜낸다는 것의 의미"라는 주제가 통합니다.
    • 명량(2014) — 장르는 전혀 다르지만, 한물간 존재로 낙인찍힌 인물이 마지막 무대에서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을 증명하는 서사라는 점에서 버드맨과 묘하게 공명합니다. 한국형 재기 서사와 비교해서 보면 흥미롭습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