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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저녁, 유튜브 알고리즘이 무심하게 내민 예고편 하나가 저를 멈춰 세웠습니다. 예순이 넘은 버스 기사가 팝스타 영화를 보러 극장까지 간다는 게 처음엔 스스로도 어색했습니다. 그런데 어린 마이클이 아버지 조지프의 눈빛 앞에서 온몸을 떨며 노래하는 그 짧은 장면이 저를 붙잡았습니다. 그 눈빛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포트라이트가 숨길 수 없었던 소년의 두 얼굴
앤트완 퓨콰 감독은 《트레이닝 데이》(2001)에서도 그랬듯 인간 내면의 명암을 조명 하나로 설명하는 감독입니다. 이 영화에서 그 솜씨는 한층 더 정교해졌습니다.
무대 장면에서는 스포트라이트(집중 조명)가 마이클 한 명을 태울 듯 강렬하게 쏟아지고, 나머지 공간은 완전한 어둠 속에 가라앉습니다. 그러나 가족이나 아버지와의 장면에서는 형광등처럼 차갑고 평평한 빛이 공간 전체를 채워 아무것도 숨기지 못하게 만듭니다. 무대의 마이클은 빛 속에서 혼자 빛나지만, 집의 마이클은 빛 아래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습니다. 이 조명 설계 하나로 감독은 대사 없이 주제를 전달합니다. 그가 왜 무대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는지를요.
카메라 앵글(촬영 각도)도 의미심장합니다. 조지프가 아이들을 훈련시키는 장면에서는 아버지의 허리 아래, 즉 어린 마이클의 눈높이에서 올려다보는 로우 앵글(하향 시선)을 자주 씁니다. 반대로 마이클이 무대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약간 위에서 내려다보는 하이 앵글(상향 시선)로 바뀝니다. 같은 인물이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카메라의 눈높이를 달리 한 것입니다. 아버지 앞의 소년과 무대 위의 왕, 그 둘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이 앵글의 교차만으로도 충분히 느껴집니다.
롱샷(원거리 촬영)과 클로즈업(근접 촬영)의 대비도 인상적입니다. 잭슨 5 시절 무대 장면에서는 형제들을 한 프레임에 담는 롱샷이 많지만, 마이클이 솔로 정체성에 눈뜨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클로즈업이 급격히 늘어납니다. 군중 속에서 혼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화면 크기 자체로 보여준 셈입니다.
저는 2004년 청도에 주재원으로 처음 부임하던 날을 떠올렸습니다. 회사의 관리책임자라는 타이틀이 있었지만, 낯선 땅에서 저는 늘 두 개의 역할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공장에서는 수십 명의 중국 직원들 앞에서 당당해야 했고, 집에 돌아오면 "아빠, 나 오늘 아무것도 못 알아들었어"라고 말하는 큰아이 앞에서 아버지여야 했습니다. 그 두 얼굴을 하루에 몇 번씩 교체하며 살았습니다. 마이클이 무대 뒤에서 혼자 쭈그려 앉아 있던 그 장면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조지프의 눈빛 아래 재능과 공포가 함께 자랐다
마이클 잭슨의 조카 자파 잭슨이 삼촌 역을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개봉 전부터 화제였지만, 화면을 실제로 보면 단순한 화제성 캐스팅이 아니었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됩니다. 자파는 마이클의 크고 깊은 눈 속에 담긴 상처와 열망을 동시에 표현해 냈습니다.
아버지 조지프에게 체벌을 받은 직후 무대에 오르는 장면이 특히 오래 남습니다. 손목에 남은 떨림을 꽉 쥐어 감추고, 마이크를 잡는 순간 얼굴이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그 찰나. 카타르시스(억눌린 감정의 폭발적 해소)인지 생존 본능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이 표정 하나로 전달됩니다. 어린 마이클을 연기한 줄리아노 크루에 발디 역시 놀라웠습니다. 과잉 표현 없이,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아버지의 시선을 피하는 몸짓 하나가 말보다 많은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당신은 이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두려움이 오히려 자신을 더 날카롭게 만들었던 순간 말입니다.
저는 있습니다. 1984년 스물 안 된 나이에 대기업 공채로 입사하던 시절, 공장장이 라인을 순시할 때 등을 곧추세우던 기억이 납니다. 원가절감 수치가 1% 모자라면 회의실 분위기가 조지프 잭슨의 거실처럼 싸늘해졌습니다. 그 압박이 저를 억울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효율과 개선을 몸으로 익히게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그 시절을 그냥 혹독했던 시간으로만 기억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공포와 재능이 같은 방 안에 있을 때, 그 공포가 재능을 키웠다 해도 그것이 옳은 방식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을요. 마이클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무대를 만들어낸 대가가 무엇이었는지를 이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보여줍니다.
자파 잭슨의 신체 언어(바디 랭귀지)도 주목할 만합니다. 아버지 앞에서는 어깨가 항상 약간 앞으로 말려 있고, 무대 위에서는 어깨가 수직으로 펴집니다. 연출된 포즈라기보다 오랜 시간 조지프라는 존재를 몸으로 기억한 사람처럼 자연스럽습니다. 실제 그의 가족이기에 가능했던 연기였을 겁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계에 따르면 뮤지컬 전기 영화 장르는 2020년대 들어 북미와 한국 모두에서 꾸준히 흥행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링크) 《보헤미안 랩소디》(2018) 이후 실존 음악인의 생애를 다룬 영화들이 음악 팬 이상의 관객층을 끌어모으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대가 도피처인지 감옥인지 모른 채 Bad 투어는 시작됐다
영화는 아동 학대 혐의가 불거지기 이전, 즉 《Bad》 월드 투어(1987~1989)가 막 시작되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선택이 영리하면서도 동시에 아쉽습니다.
영리한 이유는, 이 엔딩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저 무대가 그에게 해방인가, 아니면 또 다른 감옥인가. 감독과 각본가 존 로건이 협의해 첫 번째 혐의 이전으로 각본을 마무리하기로 했다는 제작 과정도 이 질문의 무게를 더합니다. 아쉬운 이유는, 그로 인해 영화 후반부가 다소 급하게 달려간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솔로 전성기의 내면 갈등을 좀 더 깊이 파고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묶인 정체성과 스스로 원하는 정체성 사이에서 어느 쪽을 택했을까요?
저는 중국 MRO 사업을 하던 2013년부터 2019년까지를 떠올립니다. 회사를 나와 처음으로 제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했던 시절입니다. 누군가의 직원이 아닌 저 자신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사기 피해와 사업 실패가 겹쳤고, 결국 버스 핸들을 잡게 됐습니다. 그 선택이 후퇴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그 핸들이 저를 다시 세운 무대였다고 생각합니다. 마이클의 무대처럼, 도피처인 줄 알았지만 결국 진짜 자신을 찾는 공간이었습니다.
시각 효과 면에서도 이 영화는 충실합니다.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앤드 매직(ILM)과 라이징 선 픽처스 등 복수의 VFX(시각 효과) 스튜디오가 참여해 1960~80년대 공연 무대를 재현했으며, 사운드트랙에는 《Off the Wall》(1979), 《Thriller》(1982), 《Bad》(1987) 수록곡들이 실제 음원으로 사용됐습니다. 마이클 잭슨 유산 관리 재단이 공식 협력했다는 점도 음원의 완성도를 뒷받침합니다.(출처: IMDb, 링크)
또한 이 영화에 출연한 마일스 텔러와 콜먼 도밍고는 각각 드라마틱한 감정 표현에 강점을 보이는 배우들인데, 두 사람이 조연으로 등장하는 장면마다 화면의 긴장감이 한 단계씩 올라갔습니다. 조연의 밀도가 이 영화를 단순한 팬 무비 이상으로 끌어올린 요인 중 하나입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한동안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스크린 위의 마이클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이 영화는 마이클 잭슨을 신화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를 피해자로만 규정하지도 않습니다. 재능과 공포, 자유와 감금, 무대와 집이라는 대비 구조 속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이 이 영화가 팬이 아닌 관객에게도 유효한 이유입니다.
다만 솔직히 짚을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각본이 《Bad》 투어 이전으로 마무리되면서 마이클의 후반 삶, 즉 가장 복잡하고 논쟁적인 시기가 통째로 빠집니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만, 관객으로서는 절반의 이야기를 본 느낌도 듭니다. 속편을 기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추천 대상은 이렇습니다.
-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좋아했지만 그의 생애는 잘 몰랐던 분
- 부모와 자녀 사이의 기대와 압박이라는 주제에 공감하는 분
- 1960~80년대 팝 역사와 시대 분위기를 영상으로 경험하고 싶은 분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