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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불완전한 신, 세상을 깨우다 (결함, 기적, 치유)

by 어성초님 2026. 6. 13.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외로웠던 마이클

새벽 첫차를 몰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이 핸들을 잡고 있는 내가, 대기업 사원증을 달고 중국 출장 비행기를 탔던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인지. 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던 어느 날 밤, 오래된 DVD 케이스를 꺼냈습니다. 1996년 노라 애프론 감독의 영화 《마이클》이었습니다.

결함 속에 숨겨진 신성의 역설

영화 속 마이클(존 트라볼타)은 천사입니다. 하지만 이 천사는 담배를 물고, 파이를 탐하고, 여자를 밝힙니다. 날개는 달려 있지만 깃털은 지저분하고 몸에서는 냄새가 납니다.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저는 솔직히 '이게 천사 맞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한 5분쯤 지나고 나니 오히려 그게 위로였습니다.

여기서 캐릭터 아이러니(character irony)란 인물이 기대되는 역할과 정반대의 속성을 동시에 지니면서 그 충돌 자체가 주제를 만들어내는 서사 기법을 의미합니다. 마이클이라는 캐릭터는 이 아이러니의 교과서 같은 사례입니다. 그가 거룩하기 때문에 감동을 주는 게 아니라, 허물투성이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진하게 신성을 느끼게 만듭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만약 제가 그 여관방에서 마이클을 처음 만난 저널리스트였다면, 저도 아마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냥 술이나 한 잔 권했을 것 같습니다.

사기 피해를 겪고 쿠팡 알바를 하다가 시내버스 핸들을 잡았을 때, 저는 제 자신이 철저히 결함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미리 사람을 파악하지 못한 것도, 사업이 무너지도록 둔 것도 결국 제 잘못이라고 생각했고, 그 무게가 꽤 오래갔습니다. 그런데 마이클은 영화 내내 그 결함을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설탕을 더 부어 넣고 춤을 더 크게 춥니다.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이 천사는 대사 한 마디 없이 몸으로 설명합니다.

노라 에프론은 이 영화에서 천사를 도구로 쓰되, 그것을 종교적 엄숙함으로 포장하지 않았습니다. 그 선택이 탁월했습니다. 존 트라볼타의 몸 연기는 사실상 이 영화의 신학입니다. 설교가 아니라 육체로 전달되는 메시지. 그게 이 영화가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도 꺼내볼 이유를 만들어줍니다.

평범한 기적이 굳은 심장을 흔들다

마이클이 아이오와 들판에서 외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냄새 맡아봐, 지금 이 순간을 느껴봐." 그 대사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유쾌한 천사의 너스레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야간 노선을 달리면서 그 장면이 자꾸 떠올랐을 때, 저는 그게 단순한 대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여기서 미장센(mise-en-scène)이란 화면 안의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경·조명·배우의 동선·소품 배치 등을 통해 감독이 의도를 전달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에프론 감독은 아이오와의 평범한 시골 도로와 낡은 여관, 파이 가게 같은 미장센을 기적의 배경으로 선택했습니다. 화려한 성당도, 빛나는 구름도 없습니다. 기적은 가장 낡고 소박한 곳에서 일어납니다.

주인공 마이클이 왜 굳이 아이오와를 마지막 방문지로 선택했을까요? 저는 그게 의도된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곳,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기적이 필요하다는 말을 감독은 그렇게 했습니다.

고혈압 약을 챙겨 먹고 허리가 뻐근한 채로 새벽 4시에 첫차 문을 열 때, 저는 그게 별것 아닌 일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정류장에서 할머니 한 분이 종이박스를 쓰고 서 계셨습니다. 버스 문이 열리는 순간 할머니가 "아이고 고마워" 하셨는데, 그 한 마디에 저는 이상하게 눈이 뜨거워졌습니다. 기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날 그 정류장에 제 버스가 제때 도착한 것, 그게 기적이었습니다.

영화 평론 매체 로저 에버트닷컴은 이 영화에 대해 "트라볼타는 전통적인 천사의 이미지를 뒤집어, 천국의 사신이 아니라 삶의 동반자로서의 천사를 연기해 냈다"라고 평했습니다(출처: RogerEbert.com). 삶의 동반자. 그 표현이 정확합니다. 마이클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 옆에 앉아 함께 먹고 춤춥니다. 기적은 해결이 아니라 동행이라는 것, 이 영화는 그걸 내내 보여줍니다.

상처 입은 존재만이 세상을 치유한다

사회복지사와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공부하면서 배운 것 중 제게 가장 깊이 박힌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부상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라는 개념입니다. 여기서 부상 입은 치유자란 자신이 고통을 경험했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더 깊이 공명하고, 그 경험이 오히려 치유의 능력이 되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심리학자 칼 융이 처음 제시한 이 개념은, 상담 현장에서는 거의 공리처럼 통용됩니다.

마이클이 바로 그 존재입니다. 그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완전한 천사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담배를 피우고 실수를 하고 욕망에 솔직합니다. 부서질 줄 알기 때문에 타인의 부서짐에 닿을 수 있는 것입니다.

2023년 가을, 성령충만을 경험하고 2024년 세례를 받았습니다.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조용하고 따뜻하고, 그러면서 무언가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솔직히 그전까지는 '구원'이나 '은혜' 같은 말을 머리로만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마이클처럼 지저분하고 허물 많은 존재도 신성을 품을 수 있다는 이 영화의 시선이, 제가 신앙을 받아들이는 데 어떤 정서적 준비를 해줬던 것 같습니다. 설교보다 먼저 가슴에 들어온 신학이었습니다.

보험 상담을 하면서도 그 이치를 씁니다. 제가 사기를 당해봤기 때문에, 불안한 고객이 어떤 마음인지 느낍니다. 설명이 아니라 공감으로 연결될 수 있는 건 제 상처 덕분입니다. 중국에서 8년을 보내고 낯선 서울에 돌아와 이방인처럼 뿌리를 내리려 애쓴 경험이, 상담 테이블에서 고립감을 호소하는 어르신들의 말을 더 가까이 듣게 해 줍니다.

심리상담 관련 연구 및 임상 자료를 제공하는 미국심리학회(APA)는 공감 역량의 핵심 요소로 자기 취약성의 수용(acceptance of personal vulnerability)을 꼽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완벽한 사람은 타인의 고통에 닿기 어렵습니다. 결함이 오히려 연결의 통로가 됩니다.

윌리엄 허트와 앤디 맥도웰의 로맨스 라인이 후반부에 다소 평범해지는 건 아쉽습니다. 마이클이 중심에서 물러난 자리가 상대적으로 공허하게 느껴지는 건, 그의 에너지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음새가 매끄럽지 않다는 건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영화가 마지막에 던지는 질문은 유효합니다. 치유는 완전한 존재에게서 오지 않는다. 상처를 알고, 냄새를 맡고, 설탕을 더 붓는 존재에게서 온다.

2025년 12월 21일 금연을 시작했습니다. 하루 4시간도 못 자면서 버스 핸들을 잡고, 보험 상담을 하고, 강의를 듣습니다.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마이클이 그렇게 먼저 살아줬으니까요.

이 영화는 인생의 어느 굽이에서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나' 하는 질문을 해본 사람에게 특히 권합니다. 20대의 패기도, 30대의 야심도 지나간 자리에서 조용히 자기를 다시 세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참고:
출처 1: RogerEbert.com - Michael (1996) Review
출처 2: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 Empa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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