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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타] 침묵의 공범 (복종, 균열, 양심)

by 어성초님 2026. 6. 13.

마루타 생체실험 전범재판
재판모습

1990년대 초반, 지지직거리는 VHS 테이프로 이 영화를 처음 봤습니다. 화면이 끊길 때마다 잠깐 숨을 돌릴 수 있었지만, 영화가 끝난 뒤 한동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스물몇 살의 신입사원으로, 세상이 그저 앞으로만 나아가는 곳이라 믿고 있었습니다.

국가의 명령은 복종을 당연히 요구한다

영화 《마루타》(1988)는 중일전쟁 당시 일본 관동군 731부대가 중국 하얼빈 인근에서 자행한 생체실험을 다큐멘터리적 기법으로 재현한 작품입니다. 감독 무 떵페이는 극영화와 실제 기록 영상을 혼합하는 혼성 다큐드라마 형식을 택했는데, 여기서 혼성 다큐드라마란 극적 연출과 실제 자료 화면을 교차 편집해 사실감을 극대화하는 연출 방식을 의미합니다.

저를 오래도록 불편하게 만든 장면은 잔혹한 실험 장면 그 자체보다, 오히려 그것을 지켜보는 군인들의 무표정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들은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제복을 입고, 상관의 명령을 기다리며, 메모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 부분이 이해가 안 됐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그런데 2004년 중국 주재원으로 나가 살면서, 그 질문의 답을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복종이란 단어를 우리는 너무 단순하게 씁니다. 군대식 명령 복종만을 떠올리지만, 사실 조직 안에서의 복종은 훨씬 더 일상적이고 조용하게 작동합니다.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시절, 저도 몇 번인가 "이 정도는 다들 하는 거야"라는 말을 들으며 아슬아슬한 선택지를 제안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마다 제가 선을 넘지 않은 건 대단한 용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이 영화가 남겨놓은 찝찝함, 그 감각 하나가 저를 붙들고 있었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영화는 731부대원들이 처음부터 악인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이 작품의 진짜 공포입니다. 평범한 사람이 구조적 복종 안에서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그 과정을 아주 천천히 보여줍니다. 나라면 그 자리에서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복된 잔혹함 앞에서 내면은 균열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존재는 어린 소년입니다. 대사가 거의 없는 이 소년은 부대 안에서 심부름을 하며 모든 것을 목격합니다. 감독은 이 캐릭터를 통해 관찰자 시점 서사(Observer Narrative)를 구성하는데, 관찰자 시점 서사란 사건의 직접 당사자가 아닌 인물의 눈을 빌려 관객이 내면의 도덕 감각을 유지하도록 유도하는 서사 기법을 말합니다.

소년의 눈빛은 처음에는 두려움, 그다음에는 혼란, 마지막에는 무언가 부서진 것 같은 공허함으로 바뀌어갑니다. 저는 그 눈빛의 변화를 볼 때마다 균열이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인간이 반복적으로 잔혹한 장면에 노출될 때 내면에 생기는 건 분노가 아니라 균열입니다. 감각이 점점 무뎌지고, 무뎌지는 그 자신을 더 이상 낯설게 여기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새벽 버스를 몰 때 이 생각을 자주 합니다. 사기를 당하고 모든 것이 무너진 뒤, 저도 어두운 도로를 혼자 달리며 무감각해지는 나 자신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분노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그냥 텅 빈 상태. 그때 저는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를 몸으로 알았습니다. 감각의 마비는 생존 본능처럼 찾아오지만, 그 마비가 길어지면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됩니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건, 이 영화의 연출 방식에 대한 논란입니다. 실제 부검 장면과 동물 실험 장면의 삽입은 역사적 고발의 도구인지, 아니면 그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전시인지 경계가 흐릿합니다. 충격을 주는 것이 사유를 열어주는 것과 같지 않다는 점,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 불편함은 관객이 외면하지 못하도록 붙들어 두는 감독의 의도와 완전히 무관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731부대의 실험 기록은 전후 미국이 데이터를 확보하는 대가로 관련자 기소를 면제하는 거래를 했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역사입니다(출처: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NARA).

양심은 침묵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는다

영화 후반부, 소년은 결국 부대를 떠납니다. 극적인 저항도, 고발도 아닙니다. 그냥 걸어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심이란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그 자리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는 몸의 반응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2023년 9월 성령충만을 경험하고, 2024년 9월 세례를 받은 뒤로 저는 이 영화를 다르게 읽게 됐습니다. 이전에는 이 영화가 역사 고발 다큐로 보였다면, 지금은 인간이 신의 형상(Imago Dei)을 얼마나 쉽게 훼손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고처럼 읽힙니다. 여기서 Imago Dei란 인간이 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으며 그 존엄이 침해받을 수 없다는 신학적 개념을 의미합니다.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저는 조용히 물었습니다. 내가 살아온 60년 중에 누군가의 존엄을 가볍게 여긴 순간은 없었을까, 하고.

사회복지사와 심리상담사 공부를 하면서 다시 배운 것이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을 지킨다는 것은 특별한 순간의 영웅적 선택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에서 반복되는 작고 지루한 결단의 총합이라는 것입니다. 그 일상의 결단들이 쌓이지 않으면, 누구든 조금씩 선을 넘을 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비판하는 시각 중 하나는 악을 일본 제국주의라는 특정 집단에 고정시킨다는 점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국가 폭력과 생체실험의 역사는 731부대 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냉전 시대 미국의 MKULTRA 프로젝트, 나치 독일의 인체실험 등 인류는 이 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념과 명령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윤리를 내려놓는가, 그것이 이 영화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입니다(출처: 홀로코스트 기념 박물관 USHMM).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라면 그 자리에서 어떻게 했을까, 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아직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 불확신이 바로 이 영화가 저에게 남긴 것입니다.

이 영화는 자극적인 장면에 대한 심리적 내성이 어느 정도 있는 분, 역사적 사건을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닌 인간 본성의 차원에서 생각해 보고 싶은 분께 권합니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보고 나서 한참 동안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 그런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참고: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NARA — 731부대 관련 기록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 박물관 USHMM — 의사재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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