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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차고지에서 퇴근 후 휴대폰 화면으로 이 영화를 봤습니다. 작은아들이 중국 웨이하이 살던 시절 PC방에서 바이오하자드 게임을 신나게 하고 돌아와 줄거리를 떠들어대던 그 목소리가 20여 년 만에 문득 떠올라서였습니다. N잡 크루 강의를 들으며 블로그 소재를 찾다가 그 기억이 건드려졌고, 찾아보니 2002년 작 100분짜리 영화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기억은 사라져도 몸은 싸우는 법을 기억하고 있었다
밀라 요보비치(Milla Jovovich)가 연기한 앨리스는 욕조에서 깨어나는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기억상실증(amnesia)에 걸린 채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인데, 그 눈빛에 공포와 혼란과 본능적 경계심이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대사 한 마디 없이도 관객은 그녀가 무엇을 느끼는지 압니다. 저는 그 눈빛을 보다가 엉뚱하게도 2004년 청도(青島) 공항에 처음 내리던 날을 떠올렸습니다.
회사 발령을 받아 가족과 짐을 꾸려 떠난 날이었습니다. 중국어는 니하오 정도밖에 몰랐고, 공장 직원들은 한국말을 못 했습니다. 말 그대로 기억은 있는데 언어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공장 현장에 들어서는 순간, 생산관리 20년의 감각이 말보다 먼저 움직였습니다. 불량품이 쌓인 라인을 보면 어디를 짚어야 하는지 손이 먼저 갔습니다. 숫자와 도면은 만국공통어였고, 눈빛과 손짓이 말을 대신했습니다. 앨리스가 기억을 잃고도 몸이 먼저 반응해 좀비를 제압하는 장면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가 거기 있었습니다. 몸의 기억, 즉 근육 기억(muscle memory)은 의식이 흔들려도 살아남습니다.
요보비치의 연기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은 그 분열의 표현이었습니다. 눈은 두려워하는데 손발은 이미 싸우고 있는 장면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그 순간들을 그녀는 억지 없이 자연스럽게 구현합니다. 캐릭터의 성장 곡선으로 보면 앨리스는 영화 내내 기억을 되찾으며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데, 요보비치는 그 회복 과정을 눈빛의 온도 변화로 표현합니다. 처음엔 차갑고 불안하다가, 싸울수록 단단해지는 그 눈빛이 앨리스라는 인물의 서사를 짊어집니다.
독자 여러분은 기억이 없어도 몸이 먼저 반응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오랜 습관, 오래된 기술,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위기의 순간 튀어나오는 그 무언가 말입니다.
게임의 문법을 영화 언어로 번역한 앤더슨의 카메라
폴 W. S. 앤더슨(Paul W. S. Anderson)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 때 하나의 명확한 목표를 가졌다고 밝혔습니다. 비디오 게임을 스크린으로 단순히 옮기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플레이하는 그 감각 자체를 극장에서 느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의도는 카메라 앵글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좁고 긴 복도를 정면에서 바라보는 시점, 문이 열릴 때 캐릭터 뒤를 따라가는 3인칭 시점, 어두운 방구석에서 앨리스를 올려다보는 낮은 앵글, 이 모두가 게임 카메라의 문법을 의도적으로 참조한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1984년 대기업 생산관리 현장에서 공장 합리화(factory rationalization)를 추진할 때, 저도 비슷한 방식으로 공간을 읽었습니다. 어느 동선이 낭비이고, 어느 각도에서 봐야 공정 전체가 보이는지를 파악하는 훈련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앤더슨 감독도 같은 논리로 공간을 설계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디서 봐야 공포가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되는가를 계산한 카메라였습니다.
조명 설계(lighting design)도 탁월했습니다. 하이브 내부는 자연광이 한 점도 없는 지하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앤더슨은 이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형광등 빛이 명멸하는 복도, 붉게 물든 긴급경보 조명, 완전한 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 하나만 남는 장면들, 조명의 색조와 밝기가 공포의 강도를 직접 조율합니다. 밝을 때는 잠깐의 안도를, 붉어질 때는 위기를, 꺼질 때는 절망을 관객이 자동으로 읽게 됩니다.
다만 이 연출 방식이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게임적 문법에 지나치게 충실한 나머지 캐릭터 서사가 얕아집니다. 주인공 외의 인물들은 게임 속 NPC(Non-Playable Character, 플레이어가 조종할 수 없는 조력자 캐릭터)처럼 기능하다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를 게임처럼 만들려다 영화가 게임만 못해지는 역설, 앤더슨 감독이 시리즈 내내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한계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이런 연출을 그저 "B급 영화의 한계"라고 단순하게 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달리 봅니다. 새로운 매체의 문법을 기존 매체로 번역하려는 시도 자체는 진지했고, 그 시도가 이후 게임 원작 영화들의 방향성을 바꾸는 데 기여했습니다. 틀린 시도가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도였습니다.
시스템이 명분을 가질 때 인간은 무엇으로 버티는가
영화에서 저를 가장 오래 붙잡아 둔 장면은 슈퍼컴퓨터 레드퀸(Red Queen)이 아이의 목소리로 말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선택했다." 그 차갑고 논리적인 목소리가 거대한 스피커를 통해 울릴 때, 저는 등줄기가 서늘해졌습니다. 좀비보다 그 목소리가 더 무서웠습니다.
시스템은 항상 명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엄브렐러 코퍼레이션(Umbrella Corporation)도, 레드퀸도, 바이러스를 개발한 연구소도 모두 "더 나은 세상"이라는 명분 아래 움직였을 것입니다. 저도 그 논리 안에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1984년 대기업 공채로 입사한 이후 효율을 높이고, 불량을 줄이고, 원가를 절감하는 것이 선(善)이었습니다. 그 논리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논리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 사기 피해를 당하고 주식 리딩(stock trading advisory scam)에 돈을 잃었을 때, 시스템에 철저히 배신당한 기분이었습니다. 열심히 살면 된다는 믿음, 숫자가 맞으면 결과도 맞는다는 믿음이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그 이후 쿠팡, 배민 배달 알바를 뛰고, 버스 핸들을 잡고, N잡 크루 강의를 들으며 조금씩 다시 일어서고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저를 붙잡아 준 것은 효율도 시스템도 아니었습니다. 2023년 성령을 받고, 2024년 세례를 받고, 2025년 금연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것은 명분이 아닌 관계, 논리가 아닌 믿음이 인간을 버티게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앨리스도 결국 그것으로 버팁니다. 혼자였다면 그 지하에서 살아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레인과 함께, 매트와 함께, 서로 믿고 등을 맡기는 그 관계가 시스템의 논리를 이깁니다. 미셸 로드리게스(Michelle Rodriguez)가 연기한 레인이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고도 끝까지 싸우는 장면은, 그 점에서 단순한 액션 장면이 아닙니다. 두려움을 알면서도 등을 돌리지 않는 것, 그것이 인간이 시스템과 다른 이유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인생에서 시스템이 내린 결정에 저항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 결정이 논리적으로 맞았지만, 인간적으로는 틀렸다고 느꼈던 순간 말입니다.
〈레지던트 이블〉은 완벽한 영화가 아닙니다. 캐릭터의 서사적 깊이가 얕고, 조연들은 충분히 소화되지 못한 채 퇴장합니다. 게임 원작 특유의 설정을 모르는 관객에게는 세계관이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밀라 요보비치의 신체 연기는 진짜였고, 앤더슨의 공간 연출은 영리했으며, 레드퀸이라는 존재가 던지는 질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시스템이 인간을 통제할 때, 명분과 논리 앞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버티는가. 60대 버스 운전기사가 차고지에서 휴대폰으로 보기에 100분은 짧지 않았지만,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시간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게임 원작 영화가 궁금하신 분, 좀비보다 시스템이 더 무서운 이유를 생각해보고 싶은 분께 권합니다.
추천 대상: 게임 원작 영화가 궁금한 분, 액션과 공포를 가볍게 즐기고 싶은 분, 시스템과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분.
별점: ★★★½☆ (3.5/5)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