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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첫 차를 몰고 나올 때면 서울 거리는 아직 잠들어 있습니다. 신호등만 혼자 깜빡이는 텅 빈 도로를 달리다 보면 묘한 질문이 떠오릅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의 전부일까?' 그 물음을 오래 품고 있던 차에 〈디스클로저 데이〉를 만났습니다. 스필버그라는 이름 세 글자가 예매 버튼을 누르게 했습니다. 저는 1982년 열일곱 살에 〈E.T.〉를 보고 극장 안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쳤던 세대입니다. 그 감독이 40년도 더 지나 다시 외계인을 들고 나왔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훈련된 미소가 균열을 일으키던 순간, 블런트의 눈빛이 말했다
에밀리 블런트가 연기한 기상캐스터 마거릿은 이 영화에서 가장 정교한 신체 언어(바디 랭귀지, body language — 말 대신 몸과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를 구사하는 인물입니다. 기상캐스터라는 직업 자체가 묘한 메타포(metaphor 상징적 비유)입니다. 매일 하늘을 읽고 내일을 전달하는 사람이, 하늘 너머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지요. 블런트는 초반부에 카메라 앞에서 오랫동안 훈련된 직업적 미소를 달고 나옵니다. 그런데 기이한 현상들을 겪기 시작하면서 그 미소에 조금씩 균열이 생깁니다. 눈빛이 먼저 변합니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는데 눈은 이미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그 찰나의 표정 블런트는 그 불일치를 절묘하게 포착해 냅니다.
여기서 저는 제 버스 이야기를 하나 꺼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내버스를 운전하다 보면 승객들의 표정을 백미러로 자주 봅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데 눈이 웃지 않는 사람, 무표정인데 눈빛만 살아 있는 사람. 그 불일치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운전을 시작하고 한 2년쯤 지났을 때입니다. 마거릿의 균열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조시 오코너가 맡은 사이버보안 전문가 대니얼은 정반대의 신체 언어를 씁니다. 최대한 작아지려 합니다. 어깨를 움츠리고 시선을 아래로 깔고 벽을 등집니다. 그런데 마거릿과 처음으로 진실을 공유하는 순간, 상대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그 눈 맞춤 하나가 대사 없이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나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을 믿는다,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클라이맥스에서 마거릿이 카메라를 향해 '들어라(Listen)'라는 한마디를 남기는 장면 블런트의 눈에는 눈물도, 분노도, 승리감도 없습니다. 그저 고요합니다. 60억 인구를 향해 말을 거는 사람의 눈빛이 이토록 조용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소름을 만들어 냅니다.
독자 여러분은 누군가의 눈빛에서 '이 사람은 지금 진짜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으십니까?
스필버그는 소음 대신 침묵으로 공포를 설계했다
스필버그의 연출 문법(grammar of direction 감독이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영상·음향 패턴)은 이 영화에서 한층 더 절제되어 있습니다. 〈E.T.〉와 〈미지와의 조우〉에서 그가 즐겨 썼던 역광(contre-jour 피사체 뒤에서 빛을 비추는 기법)과 로우 앵글(low angle 카메라를 낮게 놓아 인물을 크고 위압적으로 담는 촬영법)은 이번에도 등장하지만, 방식이 다릅니다. 예전에는 그 빛이 경이로움을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같은 빛이 불안을 만듭니다. 같은 도구, 다른 감정. 그것이 40년 경력의 무게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콜린 퍼스가 연기하는 은폐 세력의 핵심 인물은 이 연출 철학을 가장 잘 구현하는 캐릭터입니다. 격하게 화내는 장면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느린 손짓, 여유 있는 미소. 권력이 소리를 지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연기입니다. 그가 가장 조용한 순간이 가장 무서운 장면이라는 점에서, 퍼스의 연기는 이 영화의 공포 문법 자체를 정의합니다.
예전에 저는 이런 영화를 보면 '얼마나 빠르고 화려하게 보여주느냐'로 연출을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달리 봅니다. 보여주지 않는 것, 들려주지 않는 것이 더 무섭다는 것을 압니다. 중국 공장에서 8년을 지내면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가장 조용한 직원이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회의실에서 한마디도 안 하고 앉아 있다가 회의가 끝난 뒤 제 방으로 혼자 찾아와 결정적인 정보를 건네던 현지 관리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눈빛이 콜린 퍼스와 닮아 있었습니다. 물론 방향은 정반대였지만요.
존 윌리엄스의 음악은 이번에도 장면의 감정을 정밀하게 조율합니다. 특히 클라이맥스 직전의 침묵 음악이 완전히 사라지는 그 구간이 오히려 가장 강렬하게 남습니다. 청각의 공백이 심리적 긴장(psychological tension)을 극대화하는 방식입니다. 스필버그가 소음 대신 침묵을 선택한 이유, 저는 그것이 이 영화의 제목 '디스클로저(Disclosure 폭로, 공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진짜 폭로는 소리를 지르지 않습니다.
들어라, 그 한마디가 60년의 내 삶을 관통했다
영화는 마거릿의 '들어라(Listen)'라는 한마디로 끝납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중국 웨이하이 에서의 어느 겨울밤을 떠올렸습니다. 2004년, 처음 산동성 주재원으로 발령받아 가족과 함께 건너간 첫해였습니다. 중국어가 서툴렀고 현지 직원들과 말이 잘 통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생산라인 반장이 무언가를 계속 이야기하는데, 통역을 거쳐도 뜻이 명확히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갔습니다. 사흘 뒤 그 라인에서 품질 불량이 터졌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반장은 사흘 전부터 공정상 문제를 발견하고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듣는 척만 했지, 실제로는 하나도 듣지 않았습니다. 언어 장벽 탓이라고 위로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형식적으로 소통하는 척했던 것입니다.
그 사건 이후 저는 통역 없이도 눈빛과 손짓으로 현장의 말을 읽는 훈련을 스스로 시작했습니다. 8년의 주재원 생활이 저를 바꿔놓은 것은 중국어 실력이 아니라 '듣는 법'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 버스 핸들을 잡고 있으면서도 그 훈련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승객이 손을 살짝 드는 것, 노인이 지갑을 더듬는 속도, 아이가 창밖을 바라보는 방향. 운전하면서도 저는 계속 듣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오늘 누군가의 말을 제대로 들었습니까? 아니면 대답을 준비하느라 듣는 척만 했습니까?
영화 속 내부고발자(whistle blower 조직 내부의 비리나 은폐된 진실을 외부에 알리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도 결국 '들려질 권리'였습니다. 전 세계 방송을 통해 외계인과의 조우에 관한 역사적 증거가 공개되고, 일촉즉발이던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가 그 방송 앞에서 멈추는 장면 저는 그것이 과장된 SF(science fiction 공상과학)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신뢰라고 읽었습니다. 사람들이 제대로 들을 수만 있다면, 총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
저도 한때 사기를 당하고 주식 리딩방에 돈을 날렸을 때 주변에서 '창피하니 조용히 있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숨기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쿠팡 배달을 하면서도, 버스 핸들을 잡으면서도 그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마거릿이 남긴 '들어라'는 그래서 저에게는 60년을 관통하는 한마디였습니다.
이 영화는 UFO 스릴러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결국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진정한 소통)에 관한 영화입니다. 스필버그는 40년 전 〈E.T.〉에서 손가락을 맞대는 장면으로 '연결'을 이야기했고, 이번에는 '들어라'는 한마디로 그 이야기를 완성했습니다. 예전에는 그 연결이 낭만적이었다면, 지금은 절박합니다. 세상이 그만큼 더 시끄러워졌다는 뜻이겠지요.
60대에 블로그를 시작한 저도 결국 같은 이유로 글을 씁니다. 누군가 읽어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면서.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분들은 조직 안에서 말하지 못하고 삼킨 적 있는 분, 진실을 알고도 침묵을 강요받은 적 있는 분, 그리고 오늘 하루 제대로 들어주지 못해 미안한 사람이 있는 분입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