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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루미너리스

    버스 운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보통 밤 열한 시가 넘습니다. 샤워를 하고 나서 소파에 앉으면 몸은 천근만근인데 머리는 오히려 말똥말똥해지는 그 이상한 시간, 저는 무언가를 보거나 읽어야 겨우 잠이 듭니다. 그날도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더 루미 너 리스》라는 제목이 눈에 걸렸습니다. '루미 너 리스(Luminaries)'빛나는 존재들. 제목 하나가 마음을 붙잡았고, 저는 그냥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예순을 넘긴 버스 기사가 새벽 한 시에 영국·뉴질랜드 합작 미니시리즈를 보고 있다는 게 어울리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울리느냐 아니냐를 따질 나이는 이미 지났습니다.

    낯선 땅에 발을 디딘 자만이 아는 첫날밤의 무게

    1860년대 황금에 눈먼 자들이 뉴질랜드로 몰려들던 시대, 배에서 내리는 젊은 여성 애나의 얼굴이 화면 가득 채워졌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낯선 땅에 발을 딛는 표정희망인지 두려움인지 본인도 모르는 그 표정을 보는 순간, 저는 2004년 봄 인천공항을 떠나 ㅇ청도 유가장 공항에 내리던 제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회사 발령 하나로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중국 산동성 청도로 떠나던 그때, 저도 꼭 저런 얼굴이었을 것입니다. 설렘 반, 불안 반.

    청도에서 처음 3개월은 정말 막막했습니다. 공장 관리책임자로 부임했지만 언어도, 문화도, 사람들의 감정 표현 방식도 전부 달랐습니다. 회의 테이블에 앉으면 중국 직원들이 빠른 북방 사투리로 떠들어대는데 통역 없이는 절반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공장 라인에서 불량이 터지면 책임자들이 서로 손가락질하는 방식도 달랐고, '관시(关系·인맥과 연줄)'라는 보이지 않는 그물이 모든 의사결정 뒤에 숨어 있다는 것을 파악하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당시 제가 맡은 공장은 생산관리(production management·목표 수량과 품질을 일정에 맞춰 달성하는 업무) 체계가 전혀 잡혀 있지 않았습니다. 1984년 대기업 공채로 입사해 10년 넘게 공장합리화(factory rationalization·낭비 제거와 효율 개선 활동)를 해온 제 눈에는 손봐야 할 것이 열 곳이면 열 곳 다 보였습니다. 그런데 손을 대는 순간마다 보이지 않는 벽이 나타났습니다. 현지 라인 반장이 제 개선안을 겉으로는 "好好好(하오하오하오·좋아요)"라고 해놓고 다음 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 반장이 공장장과 오래된 관시로 묶여 있어서, 제 지시를 따르면 자기 라인의 태업 관행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은 낯선 환경에서 처음으로 내 방식이 완전히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저는 그때 처음으로 '기다림'을 배웠습니다. 애나가 뉴질랜드 땅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버티듯, 저도 그냥 버텼습니다. 두 아들이 중국 로컬학교에 입학해 울면서 돌아오던 날도, 아내가 낯선 시장에서 제대로 된 채소 하나 못 사서 허탈해하던 날도, 저는 "적응 기간이 있다"는 말 한마디를 붙잡고 출근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막막한 첫날밤의 무게를 견뎌낸 것이, 이후 15년 중국 생활을 지탱한 근육이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낯섦을 빨리 극복해야 할 문제로 봤다면, 지금은 낯섦 그 자체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침묵과 눈빛으로 완성한 배우들의 보이지 않는 연기

    이 드라마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브 휴슨(Eve Hewson)의 신체 연기입니다. 애나는 아편(opium·19세기 통증 완화제로 광범위하게 사용됐으나 강한 의존성을 가진 마약성 물질)에 중독된 상태에서 현실과 환각의 경계를 오가는 인물인데, 휴슨은 이 상태를 눈의 초점으로 표현합니다. 완전히 풀리지도 않고, 완전히 또렷하지도 않은 그 시선은 의지는 있으나 몸이 따라주지 않는 인간의 비극을 소리 없이 증언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MRO(Maintenance Repair Operations·설비 유지보수용 소모품 공급 사업) 사업이 무너지던 2019년이 떠올랐습니다. 7년을 바쳐 일군 사업이 거래처의 배신으로 허물어졌을 때, 저도 한동안 그 애나처럼 멍한 얼굴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주식 리딩방에서 마지막 남은 돈마저 털린 날 밤, 아내 앞에서 처음으로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1999년 위암 수술을 이겨낸 아내가 오히려 제 손을 꽉 잡으며 "우리 또 하면 되지"라고 했을 때, 그 손의 온기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의지가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던 그 시절, 나는 애나의 흔들리는 눈빛 속에서 나를 봤습니다.

    에바 그린(Eva Green)의 리디아 웰스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관객을 잡아끕니다. 그녀는 카리스마 넘치는 점술사(fortune teller·운명과 미래를 읽는 자)이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깊이 숨기고 있는 인물인데, 에바 그린은 이 이중성을 목소리의 강약으로 표현합니다. 다른 인물을 압도할 때는 낮고 굵게, 혼자 있을 때는 한 옥타브 올라가며 균열이 생깁니다. 그 틈새에서 우리는 리디아가 사실 얼마나 외롭고 두려운 인간인지를 봅니다. 악인조차 악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 에바 그린은 그 사실을 과잉 없이 몸으로 증명합니다.

    히메쉬 파텔(Himesh Patel)의 에머리 스테인스는 두 여배우 사이에서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역할인데, 그는 선한 인간의 어려움을 선하게 표현합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 서서 등이 살짝 굽는 그 순간들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선하다는 것이 나약함이 아니라 더 많이 상처받는다는 증거라는 것, 그의 등 선이 그것을 말해 줍니다.

    당신은 화면 속 배우의 어떤 신체 부위에서 감정을 읽으십니까? 저는 버스에서도 손님들의 눈빛과 걸음걸이를 봅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오르는 사람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르는 사람은 그날의 무게가 다릅니다. 오래 사람을 관찰한 사람이라면 이 드라마 배우들의 미장센(mise-en-scène·화면 안의 모든 시각 요소를 통한 의미 전달)이 유난히 빽빽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별자리처럼 연결된 운명이 던지는 오늘의 질문

    이 드라마에서 가장 독창적인 장치는 점성술적 서사 구조(astrological narrative structure·황도 십이궁에 등장인물을 대응시켜 운명의 연결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열두 명의 등장인물이 각각 별자리에 배치되고, 그들의 운명이 보이지 않게 얽혀 있다는 설정은 처음에는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이것이 인간관계의 진실을 꽤 정확하게 짚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매일 버스 핸들을 잡으면서 수십 명의 사람을 관찰합니다. 새벽 첫 차에 오르는 환경미화원 아저씨, 눈을 벌겋게 뜨고 탑승하는 야간 알바 청년,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 어르신. 이들은 서로 이름도 모르고 연결도 없어 보이지만, 제 버스 안에서 잠깐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합니다. 그 접점이 어떤 이에게는 하루를 버티는 작은 온기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저는 20년 넘게 사람을 관찰하며 느꼈습니다.

    원작자 엘리너 캐턴(Eleanor Catton)은 이 소설로 2013년 맨부커상(Man Booker Prize·영어권 최고 권위 문학상)을 수상했고, 직접 각본을 써서 TV로 옮겼습니다. 그 선택이 빛을 발한 것은 원작의 복잡한 구조—비선형 시제(non-linear timeline·사건을 시간 순서 없이 교차 배치하는 서술 방식)와 점성술 체계—를 클레어 매카시(Claire McCarthy) 감독이 롱샷(long shot·인물과 공간의 관계를 보여 주는 원거리 촬영)과 클로즈업(close-up·인물의 감정을 포착하는 근접 촬영)을 교차하며 공간감으로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광활한 뉴질랜드 자연은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작은 지를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좁은 실내 클로즈업은 그 작은 인간들 안의 거대한 감정을 끌어냅니다.

    한 가지 흠을 짚자면, 6부작 미니시리즈로서는 서사의 압축이 아쉽습니다. 원작 소설이 832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인 만큼, 드라마로 옮기면서 인물 간 관계의 층위(layer·감정과 관계의 복잡한 겹)가 상당히 단순화됩니다. 초반 2편까지 인물이 너무 많아 혼란스럽고, 중반부 속도 조절도 고르지 못합니다. 처음 보는 시청자라면 인물 관계도를 한 번 검색해 두고 보는 것을 권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군가와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2025년 12월 금연을 시작하던 날 밤, 40년 동안 피워온 담배를 마지막으로 손에서 내려놓으며 어떤 연결을 느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오래 참아온 아내 앞에서 제가 뻗은 손이 누군가의 별자리와 맞닿는 것 같은 그 감각. 《더 루미 너 리스》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결국 그것 아니었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더 루미 너 리스》는 완벽한 드라마가 아닙니다. 구조가 복잡하고 초반 진입 장벽이 높으며, 원작의 깊이를 다 담지 못한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낯선 땅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이야기, 보이지 않는 힘에 끌려가면서도 자신의 의지를 놓지 않으려는 이야기는 1860년대 뉴질랜드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2004년 청도 공항에 내리던 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추천 대상은 복잡한 구조를 즐기는 분, 인간의 욕망과 운명을 깊이 있게 다룬 이야기를 원하는 분, 그리고 낯선 곳에서 새 출발을 해본 경험이 있는 분입니다.

    별빛은 이미 오래전에 출발했고, 우리는 지금 그 빛을 받고 있습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