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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장안 미용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제가 쓰는 글은 영화 리뷰가 아닙니다. 처음엔 저도 영화인 줄 알고 소재를 찾았는데, 알고 보니 제24회 일본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만화 부문 우수상을 받은 일본 만화가 원작이었습니다. KOBIS에 동명의 한국 영화가 등록돼 있긴 하지만 성인 에로티카 장르의 저예산 작품이라 연출이나 메시지를 깊이 파고들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원작 만화  사쿠라이 미나 원작, 고히나타 마루코 그림  를 중심으로 한 60대 버스 운전기사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보가 쓰는 글이니 너그러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 한마디 없는 손길이 굳은 어깨를 내려 앉힌다

    만화는 배우가 없습니다. 연기 대신 선(線)이 감정을 전달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저는 이상하게도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보다 더 가슴이 뛰었습니다. 미용사가 수감자의 머리를 감겨주는 장면 하나가 그 이유였습니다.

    교도소 미용실에서는 대화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미용사도 말 못 하고, 손님인 수감자도 말 못 합니다. 그런데 작가 고히나타 마루코의 그림은 그 침묵 속에서 전달되는 것들을 촘촘하게 담아냅니다. 물의 온도를 손으로 확인하는 미용사의 손끝, 두피를 누르는 압력의 강약, 수건을 감쌀 때의 속도 이 미장센(mise-en-scène, 화면 속 요소의 배치와 구성)들이 "당신은 지금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소리 없이 전달합니다. 수감자의 굳었던 어깨가 조금씩 내려앉고, 눈가가 붉어지는 컷(cut, 만화의 각 장면 단위)에서 저는 한동안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저는 매일 시내버스를 몰면서 비슷한 감각을 압니다. 승객과 제가 나눌 수 있는 말은 기껏해야 한두 마디입니다. 그런데 문을 열어주는 타이밍, 빗길에 한 박자 더 늦추는 코너링, 노인 승객이 자리를 잡기 전에 출발하지 않으려는 기다림 이것이 제가 수백 명의 승객에게 건네는 전부입니다. 말 없는 배려가 때로는 말보다 더 깊이 닿는다는 것을, 이 만화는 조용히 증명합니다.

    독자 여러분은 말없이 누군가에게 전달받은 배려를 기억하십니까? 그 손길 하나가 그날 하루를 버티게 해 준 경험이 있으신가요?

    예전에 저는 배려란 반드시 말로 표현해야 완성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중국 공장에서 관리 책임자로 일할 때도 지시와 설명을 말로 명확히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버스 핸들을 7년째 잡으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때로는 조용히 속도를 줄이는 것이 어떤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합니다. 이 만화가 바로 그 진실을 교도소 미용실이라는 극단적 공간에 놓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물 안에서도 하늘의 푸르름은 보인다

    이 작품의 핵심 문장은 딱 하나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모른다. 하나, 하늘의 푸르름을 안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저는 멈췄습니다. 서론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노트북 앞에서 한 줄도 못 쓰고 멍하니 앉아 있던 날 유튜브를 뒤적이다 이 작품을 처음 알게 됐는데, 이 문장이 화면에 뜨는 순간 가슴 어딘가가 서늘하게 열리는 느낌이었습니다. 60대 초반에 블로그라는 것을 처음 시작한 저도, 어쩌면 우물 안 개구리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지털은 낯설고, 글쓰기는 어색하고, 인터넷 세상의 넓이가 두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은 말합니다. 바다를 몰라도 괜찮다고. 지금 내 자리에서 보이는 하늘의 푸르름을 아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이 서사 구조(narrative structure, 이야기가 전달되는 방식과 틀)는 작가 사쿠라이 미나가 치밀하게 설계한 것입니다. 교도소라는 가장 폐쇄된 공간을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완전히 단절된 곳에서도 인간은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욕구를 품는다는 것, 그리고 그 욕구는 죄를 지은 사람도 짓지 않은 사람도 동등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저는 2004년에 가족을 데리고 중국 청도로 건너갔습니다. 큰아이가 중국 로컬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하던 날,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교실 문 앞에 아이를 세워두고 돌아서는데 아이가 울지도 않고 조용히 고개를 돌려 제 눈을 피했습니다. 그 눈빛이 평생 잊히지 않습니다. 담장 안에 혼자 남겨진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6개월 만에 중국어로 친구들과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물 안에 갇혔지만, 그 안에서 하늘을 찾아낸 겁니다. 이 만화의 수감자들이 머리를 자르는 시간 동안 잠깐 자신을 되찾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은 가장 좁은 공간에서 가장 크게 숨 쉬었던 순간이 있으십니까?

    담장 밖으로 나온 뒤에야 안에서 받은 것을 안다

    이 작품이 단순한 힐링 만화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카타르시스(catharsis, 억눌린 감정의 해방과 정화)를 출소 이후에 배치하기 때문입니다. 교도소 안에서 머리를 잘랐던 여성들이 사회로 돌아온 뒤, 그 미용실에서 받은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천천히 깨달아가는 에피소드들이 이 작품을 단순한 설정 이상으로 끌어올립니다.

    저는 2013년부터 7년간 이어간 MRO(Maintenance, Repair and Operations, 기업의 유지·보수·운영에 필요한 소모품 공급 사업) 사업이 무너지고 사기까지 당하면서 경제적으로 바닥을 쳤습니다. 쿠팡 새벽 배달을 뛰고 배민 오토바이를 몰던 시절, 저는 담장 안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밤이 계속됐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 새벽 3시에 올려다보던 아파트 단지 사이의 좁은 하늘에 별이 참 많았습니다. 담장처럼 높은 빌딩들 사이로 잘린 하늘이었지만 별은 거기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뭔지 몰랐는데, 지금은 압니다. 그게 버티는 힘이었습니다.

    이 만화의 미용사 캐릭터도 그런 존재입니다. 자신이 무언가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냥 머리를 자를 뿐입니다. 그런데 받는 사람은 오래 기억합니다. 이 모티프(motif,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반복적 주제 요소)는 작품의 가장 강력한 리얼리티(reality, 현실감)를 만들어냅니다.

    2025년 12월 21일 금연을 시작한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하나님의 힘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혼자서는 수십 번 실패했던 일을 2023년 9월 성령을 받은 이후 조금씩 달라지더니, 결국 담배를 끊었습니다. 담장 안에서 받은 것이 담장 밖에서 꽃을 피운 것입니다. 이 만화를 읽으면서 그 기억이 겹쳤습니다.

    여러분이 가장 힘들었던 시간, 그때 받은 것이 지금의 여러분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담장 안 미용실》은 완벽한 작품이 아닙니다. 에피소드 방식의 구성이다 보니 이야기의 깊이가 고르지 않고, 일부 캐릭터는 감정선이 너무 빠르게 정리되어 아쉬운 느낌을 줍니다. 교도소라는 공간이 지나치게 이상화되어 있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습니다. 현실의 교도소가 이 만화만큼 따뜻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은 저도 압니다.

    그러나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오래 남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담장 안에 있습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보이는 하늘이 있습니까? 사회생활에 지친 직장인, 육아의 고단함 속에 있는 부모, 저처럼 60대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분들 —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단, 자극적인 전개나 화려한 연출을 기대하신다면 맞지 않습니다. 조용히 앉아서 자신을 들여다볼 준비가 된 분께 이 만화를 권합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