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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유튜브를 뒤적이다가 짧은 예고편 하나가 알고리즘에 걸려들었습니다. '손해사정사'라는 단어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곧이어 '보험금'이라는 단어가 심장을 살짝 건드렸습니다. 저는 10년 전 사기를 당한 사람이니까요. 예고편 마지막에 "누가 범인인지보다, 왜 사람은 무언가를 믿게 되는가"라는 문장이 화면에 떴을 때 소파에 앉은 채로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날 바로 극장 예매를 했습니다.
냉정한 사정사도 무너뜨리는 믿음의 덫
중국 MRO 사업을 하던 시절, 저는 한 파트너를 굳게 믿었습니다. 청도 공장 시절부터 10년 넘게 밥도 먹고 술도 마신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 사업, 같이 하자"고 했을 때 저는 계약서 한 장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관계에서 나온 신뢰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믿음은 처음부터 설계된 것이었습니다. 그가 먼저 다가온 것도, 사업 이야기를 꺼낸 것도, 저를 서서히 안심시킨 것도 — 전부 계획이었습니다.
영화 속 유나는 냉정한 손해사정사(보험사고를 조사하고 보상금액을 결정하는 전문직)입니다. 감정보다 수치와 근거로 세상을 읽는 사람입니다. 그런 유나도 순규를 파고들수록 점점 혼란에 빠집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10년 전 제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이상하다'는 느낌이 올라올 때마다 스스로 눌러버렸던 기억이요. "아니야, 내가 너무 의심하는 거야. 이 사람이 그럴 리 없어." 그 자기 검열(스스로 의심을 억누르는 심리 방어 기제)이 저를 더 깊이 빠뜨렸습니다.
젊을 때 이런 사기 피해 이야기를 영화에서 보면 단순히 "피해자가 어리석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60대가 된 지금 이 영화를 보니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믿음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본능에서 나옵니다. 무서운 건 범인이 아니라, 내가 믿고 싶어서 스스로 눈을 감아버리는 그 순간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그런 순간, 경험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버스 거울 속에서 매일 목격하는 인간의 민낯
저는 매일 서울 시내를 달립니다. 버스 운전을 하면서 룸미러(운전자 뒤쪽 시야 확보를 위한 내부 반사경)로 승객들을 봅니다. 아무도 운전기사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신경 쓰지 않으니, 사람들은 꽤 솔직한 얼굴을 하고 탑니다.
어느 날 오전, 일흔은 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타셨는데,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하시면서 계속 "응, 응, 알았어" 하시더니 내리실 때쯤 울고 계셨습니다. 정류장에서 내리시면서도 핸드폰을 꼭 쥐고 계셨어요. 나중에 옆 승객한테 들으니 요즘 노인 보이스피싱이 많다는 말을 하더군요. 저는 그때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신호가 바뀌었고, 저는 핸들을 잡아야 했으니까요.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오래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늘 약한 사람, 외로운 사람, 간절한 사람 곁에 먼저 파고듭니다. 할머니도 그랬고, 10년 전의 저도 그랬습니다. 《난센스》에서 순규가 웃음치료사(웃음을 매개로 심리적 치유를 돕는 직업)라는 설정이 더 섬뜩하게 느껴진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아픈 사람 곁에, 웃음이 필요한 사람 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존재를 어떻게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암 투병 끝에 홀로 저수지에서 숨진 남성의 유일한 보험 수령인이 혈연도 아닌 그 웃음치료사라는 설정 — 이제희 감독은 우리가 가장 방어하기 힘든 지점을 정확히 찌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웃음 뒤에 숨은 균열, 두 배우가 몸으로 말하다
유나를 연기한 오아연 배우의 연기는 "절제된 균열"이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제가 대기업 공장에서 품질 사정(제품 불량 여부를 수치와 기준으로 검수하는 과정)을 담당하던 시절, 베테랑 검수자들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불량을 골라냈습니다. 유나의 눈빛이 정확히 그랬습니다. 그런데 오아연 배우의 탁월함은 그 균열이 생기는 순간을 대사 없이 눈꺼풀의 미세한 떨림과 굳어가는 입술 끝으로 전달한다는 점입니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말없이 표정·몸짓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의 교과서 같은 연기였습니다.
반면 박용우 배우의 순규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그의 표정은 늘 따뜻하고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웃음이 오히려 불안합니다. 눈이 웃고 있는지 입만 웃고 있는지 경계가 모호합니다. 유나와 대화할 때 결코 몸을 먼저 닫지 않고 항상 오픈 바디랭귀지(상대를 향해 열린 자세를 취해 신뢰감을 주는 몸의 언어)를 유지하는데, 그 개방성 자체가 역설적으로 긴장감을 줍니다. 두 배우의 케미는 서로를 밀어내는 자석처럼, 가까워질수록 더 팽팽해지는 구조입니다. 오민애 배우가 연기하는 엄마 미숙의 눈빛에서는 시골에서 아버지 출타 때마다 어머니 눈에 담기던 막연한 불안감이 겹쳐 보여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이 영화는 스릴러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본질은 인간의 인지 편향(자신이 믿고 싶은 방향으로 정보를 해석하는 심리 현상)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제희 감독의 데뷔작이라고 하기엔 놀라울 만큼 단단한 연출입니다. 여러분이라면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셨을 것 같으신가요?
117분 동안 불편하지만 필요한 질문을 받고 싶으신 분, 그리고 한 번이라도 사람을 너무 믿어서 상처받은 경험이 있으신 분께 이 영화를 권합니다. 사기 피해 경험이 있는 60대 버스기사인 제가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던 영화입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