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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센스 -믿을것인가 ? 의심할 것인가?

    손해사정의 세계는 숫자 뒤에 감춰진 사람의 이야기다

    보험설계사 일을 하다 보면 '보험금'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영화는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동료 설계사가 이 영화 봤냐고 물어봤을 때, 손해사정사(保險損害査定士 보험 사고의 손해액을 조사·평가하는 전문직)가 주인공이라는 말에 바로 극장 날을 잡았습니다. 업무적 호기심으로 시작한 관람이었는데, 앉고 나서 손이 무릎에서 한 번도 제대로 올라가지 않더군요.

    영화 《난센스》(2025, 감독 이제희)는 냉정한 일처리로 이름난 손해사정사 유나(오아연)가 아무 혈연 관계도 없는 웃음치료사 순규(박용우)에게 거액의 사망 보험금이 흘러가는 의문스러운 사건을 맡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사망자의 가족도 아닌 사람이 수혜자로 지정됐다는 설정, 저는 이게 그냥 허구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보험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서류 뒤에 얼마나 다양한 사연들이 숨어 있는지 압니다. 어떤 고객의 수익자 지정 하나에도 수십 년의 관계와 상처와 선택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유나가 숫자로 가득 찬 세계에서 일하면서도 정작 감정 앞에서는 무장해제가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예리한 관찰입니다.

    이제희 감독은 KAFA(한국영화아카데미 — Korean Academy of Film Arts, 봉준호·장준환·최동훈 등을 배출한 국내 최고 영화 교육기관)를 졸업한 신예로, 《난센스》는 그의 장편 데뷔작입니다. 연출과 각본, 음악까지 혼자 담당했다는 사실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실감됐습니다. 음악 한 줄기가 장면을 설명하기보다 감정을 슬쩍 건드리고 사라지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상업성보다 심리적 밀도를 선택한 감독의 용기, 저는 그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독자분들께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당신은 직업적으로 사람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적이 있으신지요. 냉정함이 능력으로 인정받는 그 자리에서 막상 나 자신의 감정은 어디다 뒀는지 돌아본 적 있으신가요?

    웃음치료라는 이름으로 스며드는 것이 치유인지 침투인지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하고 또 가장 정직한 설정은 바로 순규의 직업입니다. 웃음치료사(笑療師 — 웃음을 매개로 심리적·신체적 회복을 돕는 치유 전문가)는 상처 입은 사람 곁으로 다가가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그 다가감이 진심인지 계산인지를 겉으로 구별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이제희 감독은 순규를 끝까지 도덕적으로 확정 짓지 않습니다. 관객은 그가 치유자인지 착취자인지 판단을 유보한 채 영화를 따라가야 합니다. 저는 이 모호함이 연출의 실수가 아니라 의도라고 봤습니다. "따뜻한 말과 손길도 목적에 따라 무기가 된다"는 불편한 진실을 감독은 직접 말하는 대신 관객의 몸으로 느끼게 만드는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10여 년 전 사기를 당했습니다. 중국 MRO 사업(기계·설비 소모품 유지보수 관련 자재 공급 사업)을 접고 귀국한 직후였습니다. 가해자들은 칼을 들고 오지 않았습니다. 따뜻하게 웃으며 왔습니다. 막막한 시절, 제 허점과 외로움을 정확히 찾아내어 스며들었습니다. 순규가 '상처 입은 이들의 틈새로 스며든다'는 영화 소개 문구가 그래서 저한테는 그냥 카피가 아니었습니다. 몸으로 겪어본 문장이었습니다.

    버스를 운전하다 보면 매일 수백 명의 얼굴을 마주합니다. 힘없이 올라탄 어르신, 뭔가를 꽉 쥐고 창밖만 바라보는 젊은 친구, 혼자 작게 웃고 있는 사람. 저는 그 사람들을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저 사람의 속은 지금 보이는 겉과 얼마나 다를까.유나도 아마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이었을 겁니다. 직업적으로 훈련된 눈이 아니라, 살면서 다쳐서 키운 눈.

    오아연 배우는 《곤지암》에서 주목받은 후 이 영화로 첫 장편 주연을 맡았습니다. 유나의 감정이 바깥으로 터지지 않고 눈빛과 손끝으로만 새어 나오는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박용우는 순규를 연기하면서 위험할 만큼 자연스러운 친근감을 만들어냈는데, 그게 오히려 더 무서웠습니다.

    여기서 한 번 더 여쭤보겠습니다. 누군가가 당신의 상처를 정확히 짚어줬을 때, 당신은 그 사람이 고마웠나요, 아니면 어딘가 섬뜩했나요?

    신뢰가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사람을 믿는다는 것의 무게

    중국에서 15년을 살았습니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땅에서,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용기 있는 행위인지 배웠습니다. 중국에는 관계를 뜻하는 말로 구안시(關係 — 인간관계, 신뢰 기반의 사회적 연결망)라는 개념이 있는데, 그게 쌓이는 데는 몇 년이 걸리고 무너지는 데는 하루도 안 걸린다는 것도 거기서 배웠습니다. 귀국 후에 사기를 당하면서 그 교훈은 더 날카로워졌습니다. 이후 쿠팡 알바, 배민 알바, 버스 핸들, 보험 서류. 다시 세우는 일은 드라마틱하지 않습니다. 매일 조금씩, 그게 전부입니다.

    유나가 순규에게 서서히 흔들리는 장면들을 보면서 저는 그녀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의심하도록 훈련된 사람도 결국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 앞에서는 무너집니다. 그건 약점이 아니라 인간의 당연한 모습입니다. 아버지의 부재로 고통받는 어머니(오민애)를 돌보면서 정작 자신의 상처는 들여다보지 못했을 유나, 저는 그 삶의 구조가 낯설지 않았습니다. 남을 챙기는 데 에너지를 다 쓰다 보면 자기감정은 어느새 바닥에 쌓인 먼지처럼 됩니다.

    올해 12월 21일부터 금연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짐한 일입니다. 담배를 피울 때는 몰랐는데, 끊고 나서 보니 그게 저한테는 일종의 자기 회피(自己回避 — 불편한 감정이나 상황을 외면하는 심리적 방어기제)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순규가 웃음이라는 도구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듯, 저도 담배 한 모금으로 감정을 잠시 접어두곤 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그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이제희 감독의 이 영화는 서사적 쾌감(敍事的快感 — 이야기가 맞물려 해소되는 만족감)보다는 잔잔한 불편함을 선택했습니다. 결말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보험 범죄를 다룬 영화를 기대하고 들어갔다가 심리 드라마를 만나는 느낌이랄까요. 한국 보험 범죄 관련 실제 사례가 궁금하신 분들은 금융감독원 보험사기 신고센터를, 웃음치료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한국웃음치료협회 공식 사이트를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여쭤보겠습니다. 당신 삶에서 누군가가 '웃으면서 스며들었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그 스며듦이 지금 생각하면 치유였나요, 아니면 상처였나요?

    추천 대상: 보험·법률 관련 직종 종사자, 관계 속에서 상처를 경험한 분, 화려한 액션보다 심리적 긴장감을 선호하는 관객, 인간의 선의와 의도 사이 경계를 생각해보고 싶은 분께 권해드립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 극장을 나와 버스 핸들을 잡으면서도 순규의 얼굴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제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