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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운전을 하다 보면 거울 속 얼굴들이 책 보다 많은 걸 가르쳐 줍니다. 어느 날 종점에서 한숨을 삼키던 중년 신사, 창문에 이마를 기댄 채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던 교복 차림의 학생. 저는 운전대를 잡으면서 늘 생각합니다. 저 사람은 지금 어떤 전쟁 중일까. 영화 〈나폴레옹〉을 보고 난 뒤, 그 생각이 더 깊어졌습니다. 유럽 대륙을 손에 쥔 황제도 결국 같은 전쟁을 치르고 있었으니까요.
결핍의 눈빛으로 유럽을 호령한 황제의 두 얼굴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나폴레옹은 제가 예상했던 모습과 전혀 달랐습니다. 영웅의 위엄보다 결핍의 냄새가 먼저 났습니다. 피닉스는 나폴레옹의 눈빛을 시종일관 불안하게 유지합니다. 전장에서 말을 타고 호령할 때조차 그 눈 안에는 어딘가 인정받지 못한 아이의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 코르시카 출신이라는 태생적 콤플렉스(열등감이 뿌리 깊이 박힌 심리적 상처), 프랑스 본토 귀족들에게 받아온 은근한 멸시, 그 상처들이 눈빛 하나에 다 담겨 있었습니다.
특히 조제핀 앞에서의 몸짓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유럽을 호령하던 그 남자가 조제핀 앞에서는 어깨가 살짝 내려앉고, 목소리가 한 톤 낮아지며, 시선이 흔들립니다. 전장의 황제와 사랑 앞에 선 한 남자가 같은 몸 안에 공존하는 것을 피닉스는 억지 없이 표현해 냅니다. 조제핀의 불륜을 알게 된 장면에서 그가 보여준 표정 분노와 굴욕과 사랑이 동시에 뒤엉킨 그 얼굴 은 대사 없이도 충분히 설명됩니다. 아우스터리츠 전투 직전, 말 위에 올라 병사들을 내려다보는 장면에서 그의 턱선은 단단하게 굳어 있지만 손은 미세하게 떨립니다. 그 손 하나가 이 인물의 모든 이중성을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1984년 대기업 공채로 첫 출근하던 날을 떠올렸습니다. 생산관리 부서 막내로 배치받은 스물두 살의 저는 매일 아침 공장 라인 앞에서 어깨를 펴고 서야 했습니다. 속으로는 뭘 해야 할지 몰라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겉으로는 침착한 척해야 했습니다. 그때 선배가 한마디 했습니다. "눈빛이 흔들리면 라인이 흔들린다." 나폴레옹의 손이 떨리면서도 눈빛은 고정된 그 장면에서, 저는 그 말이 다시 귀에 울렸습니다.
바네사 커비의 조제핀은 또 다른 층위에서 빛납니다. 그녀는 나폴레옹을 조종하는 여인이 아니라, 권력자의 그늘에서 자신의 욕망과 생존 본능을 동시에 유지해야 했던 복잡한 인간으로 조제핀을 그려냅니다. 눈빛에 계산과 진심이 번갈아 스치는데, 어느 쪽이 진짜인지 끝내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커비 연기의 핵심이었습니다. 독자분들은 혹시 이런 사람을 주변에서 만나본 적이 있으신가요? 진심인지 계산인지 끝까지 모르겠는 그런 사람. 그게 더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빙판이 삼킨 병사들과 리들리 스콧의 반영웅 연출
리들리 스콧은 1937년생입니다. 저보다 스물여덟 살 위인 이 거장이 여든여섯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메시지입니다. 평생 만들고 싶었던 영화를 이 나이에 완성했다는 것. 꿈은 나이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저도 예순 넘어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이 사실을 자주 되새깁니다.
스콧의 카메라는 나폴레옹을 영웅화하지 않습니다. 전투 장면에서 카메라는 오히려 처참함 쪽에 더 오래 머뭅니다.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압권인 빙판 붕괴 장면은 부감 숏(카메라를 높은 위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촬영 기법)으로 처리되는데, 얼음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병사들의 비명이 카메라와 함께 멀어질수록 그 공포가 역설적으로 더 커집니다. 가까이 붙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때로는 더 잔인한 진실을 보여줍니다.
색감 연출도 주목할 만합니다. 전쟁 장면은 채도(색의 선명한 정도)를 낮춰 흙빛과 잿빛으로 처리되는 반면, 나폴레옹과 조제핀이 단둘이 있는 내밀한 공간은 따뜻한 황금빛 조명이 감쌉니다. 이 대비는 단순한 미장센(화면 구성)이 아닙니다. 스콧이 말하고 싶은 것은 분명합니다. 이 남자에게 진짜 세계는 전장이 아니라 그 황금빛 방이었다는 것입니다.
조명 활용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나폴레옹이 황제 즉위 장면에서 스스로 왕관을 머리에 얹는 순간입니다. 교황(피우스 7세)이 옆에 있음에도 그는 왕관을 교황 손에서 빼앗아 직접 씁니다.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지만, 스콧은 이 장면을 역광(피사체 뒤에서 비추는 빛)으로 처리해 나폴레옹의 실루엣을 강조합니다. 자신이 자신의 신이 되겠다는 선언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그 실루엣이 너무 외로워 보입니다.
한스 짐머(Hans Zimmer)의 음악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여러 악기가 어우러지는 편곡 방식)이 전투 장면을 감싸면서도, 나폴레옹의 독백 장면에는 첼로 독주 한 가닥만 흐릅니다. 그 고독한 소리 하나가 이 영화 전체를 요약합니다.
영화 〈나폴레옹〉은 2023년 전 세界 누적 박스오피스 약 2억 2천만 달러(약 2,900억 원)를 기록했습니다. (출처: Box Office Mojo, 링크) 한국 개봉 당시 관객 수는 약 40만 명을 넘어섰으며, 역사 대작으로서 상당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링크)
사랑이 남긴 상처가 권력보다 깊었던 나폴레옹의 진짜 전쟁

저는 2004년 가족을 데리고 중국 산동성 칭다오로 떠났습니다. 회사 명령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그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긴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공장 관리책임자라는 직함은 그럴듯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말이 안 통하고, 문화가 달랐으며, 현지 직원들의 눈빛에는 낯선 긴장이 흘렀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외로움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지에서 조제핀을 그리워하듯, 저도 매일 밤 고향 냄새, 어릴 적 감자밭에서 흙을 만지던 감각이 떠올랐습니다. 시골 마을에서 담배 모종을 심고, 벼를 베고, 옥수수를 따던 그 단순한 시간이 웨이하이의 공장 불빛 아래서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릅니다. 타지에서의 외로움은 쓸쓸한 감정이 아닙니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 같은 공허함입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을 중국 로컬학교에 보냈습니다. 큰아들이 처음 등교하던 날, 중국어 한 마디 못 하는 아이가 낯선 교실에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지금도 코끝이 시큰합니다. 나폴레옹이 전쟁의 승패보다 조제핀의 편지 한 장에 더 마음을 쏟듯, 저도 그 시절 아이들의 하루하루가 가장 큰 전쟁이었습니다. 다행히 두 아이 모두 잘 버텨줬고, 큰아들은 지금 경찰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결국 조제핀과 이혼합니다. 후계자가 없다는 정치적 이유였지만, 영화는 그 이혼 장면을 아우스터리츠 전투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들여 보여줍니다. 이 장면이 이 영화의 진짜 클라이맥스(이야기의 절정)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력의 정점에서 사랑을 스스로 포기하는 그 표정. 이기면서 지는 얼굴이 어떤 것인지를 피닉스는 그 한 장면에서 보여주었습니다.
예전엔 나폴레옹 하면 전략가, 정복자, 천재 군인만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게 봅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끝내 지키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권력을 얻으면 사랑이 따라올 줄 알았겠지요. 그런데 권력이 커질수록 사랑은 멀어졌습니다. 독자분들은 어떠신가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정작 소중한 것을 내려놓은 적이 있으신가요?
나폴레옹 연구의 권위자 앤드루 로버츠(Andrew Roberts)는 그의 저서 『나폴레옹: 생애』에서 "나폴레옹의 편지는 당대 최고의 연애편지이자 가장 아픈 자기 고백"이라고 평했습니다. (출처: Andrew Roberts, 『Napoleon: A Life』, Penguin Books, 링크) 영화는 그 편지의 온도를 충실히 스크린에 옮겼다고 봅니다.
역사 영화가 부담스러운 분들께도 이 영화를 권합니다. 전쟁 장면이 있지만 이 영화의 본질은 한 남자의 사랑과 결핍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중년을 넘어 인생의 무게를 느끼는 분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소중한 것을 놓쳐온 분들이라면 조제핀과의 마지막 작별 장면에서 가슴 어딘가가 조용히 저릴 것입니다.
60대의 저도 그랬습니다. 화면이 꺼진 뒤 한참 소파에 앉아 있었습니다. 황제도 결국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전쟁의 패배가 아니라,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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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