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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스물두 살의 저는 퇴근 후 동료들과 허름한 극장 의자에 앉아 팝콘도 없이 이 영화를 봤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영화가 30년이 훌쩍 넘어 환갑을 바라보는 지금의 저에게 다시 이렇게 말을 걸어올 줄은.
안성기의 소심한 눈빛이 전한 체념과 경외의 사랑법
안성기가 연기한 영민은 제가 지금껏 스크린에서 본 가장 조용한 사랑꾼이었습니다. 그는 소리치지 않습니다. 달려가지도 않습니다. 그저 공연장 객석 한편에서 혜린을 바라볼 뿐이지요. 안성기는 그 눈빛 하나로 모든 것을 말합니다. 짝사랑하는 사람 특유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듯한 반쯤 체념한 시선. 익명으로 꽃을 보내고 앨범을 건네면서도 정작 본인은 한 발짝 뒤에 물러서 있는 영민의 몸짓은 소심함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경외심(敬畏心, 감히 가까이할 수 없다는 두려움 섞인 존경)처럼 보입니다.
황신혜의 혜린은 또 어떻습니까. 첫 영화 데뷔임에도 그녀는 이혼의 상처를 안은 여자를 억지스럽지 않게 담아냈습니다. 처음에는 굳어 있던 눈빛이 영민의 꾸준한 곁 지킴 앞에서 조금씩 풀려가는 표정의 변화, 그 미장센(mise-en-scène, 화면 안의 모든 시각적 요소를 배치하는 연출 방식)이 말보다 훨씬 많은 것을 전달하였습니다.
그때 스물두 살의 저는 극장 문을 나서며 "황신혜 진짜 예쁘다"는 동료들의 말에 따라 웃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이상하게 무거운 것이 걸려 있었습니다. 영민이 혜린에게 꽃을 보내면서도 정작 자기 마음을 말하지 못했던 것처럼, 저도 그 시절 중요한 말을 제때 건네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여쭤봅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오히려 뒤로 물러선 적이 있으셨습니까? 그 침묵이 사랑이 아니라 겁쟁이짓이었는지, 아니면 그것도 사랑의 한 형태였는지, 저는 아직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2004년 중국 청도 발령을 받았을 때 저는 가족을 데리고 낯선 땅으로 떠났습니다. 중국 로컬 학교에 다니던 작은아들이 어느 날 밥상에서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아빠, 나 오늘 수업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 그날 밤 저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이 앞에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끝내 꺼내지 못하고 그냥 등을 돌렸습니다. 영민처럼. 사랑하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그 버릇은, 어쩌면 남자들 깊숙이 박힌 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배창호의 롱테이크 카메라가 천천히 어루만진 사랑의 속도
배창호 감독은 이 영화에서 롱테이크(long take, 편집 없이 하나의 장면을 길게 이어 찍는 기법)와 유려한 카메라 워크(camera work, 카메라의 움직임과 각도 운용)를 즐겨 씁니다. 단컷 편집으로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카메라가 천천히 인물들 곁을 맴돌며 관객에게 숨 쉴 틈을 줍니다.
저는 이것이 매우 의도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빠르게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곁에 머물다 보면 어느 순간 이미 깊어져 있는 것. 카메라의 속도가 곧 이 영화의 사랑관(愛情觀)입니다.
조명도 주목할 만합니다. 혜린의 얼굴에 닿는 빛은 시종일관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동시에 약간은 희뿌옇습니다. 선명하지 않은 빛.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형상화한 것처럼 보입니다. 영화 평론가 정성일은 배창호 감독의 이 시기 작품들에 대해 "감정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감정이 흐르도록 내버려 둔다"라고 평한 바 있습니다. (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비평 아카이브, 링크)
예전에는 이 느릿한 카메라가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스물두 살의 저는 생산관리 부서에서 라인 효율과 원가절감 수치만 들여다보던 사람이었으니, 빠르게 핵심을 보여주지 않는 영화가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60대에 접어든 지금, 버스 운전석에 앉아 서울 골목골목을 하루 종일 달리다 보면, 빠른 것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님을 몸으로 압니다. 헬스장에서 매일 러닝머신 위를 달리며 허리디스크를 조금씩 되살려온 지난 1년처럼, 느리지만 꾸준한 것이 결국 가장 깊은 곳까지 닿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인생에서 빠르게 포기한 것 중에, 조금만 더 느리게 버텼더라면 달라졌을 것이 있으십니까?
덕수궁 뒷모습이 끝내 남긴 것,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제가 한국 영화에서 본 가장 오래 남는 엔딩 중 하나입니다. 혜린이 임신중독증(妊娠中毒症, 임신 중 고혈압·단백뇨·부종 등이 나타나는 합병증)으로 아이를 낳고 세상을 떠난 뒤, 몇 년이 흐른 어느 봄날 덕수궁에서 딸 다혜의 손을 잡고 걷는 영민의 뒷모습. 카메라는 그 뒷모습을 오래, 아주 오래 붙잡고 있습니다.
그 뒷모습이 왜 그토록 쓸쓸하면서도 따뜻한지, 스물두 살의 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압니다.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도 살아가는 것, 그것 자체가 그 사람에 대한 가장 긴 헌사(獻辭, 바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저는 덕수궁 돌담길 방향 버스 노선을 달리다가 그 정류장 앞에서 문득 그 장면을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은 유모차를 밀며 올라타신 중년 남성 승객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곤히 잠들어 있었고, 그분은 창밖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표정이 영민의 뒷모습과 겹쳤습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 자료에 따르면, 〈기쁜 우리 젊은 날〉은 1987년 서울 관객 31만여 명을 기록하며 그해 흥행 상위권에 올랐고, 배창호 감독의 대중적 재기를 확인한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MDb, 링크)
이 영화가 지금도 이야기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사랑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때로 말하지 못한 채 끝나고, 때로 잃고 나서야 깊어지며, 그럼에도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는 것. 그 진실을 이 영화는 130분 동안 조용하고 단단하게 붙들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당신 삶에 끝내 말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사랑이 있으십니까? 그것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영민을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이 영화를 추천드리고 싶은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빠른 연애 드라마에 지쳐 조용하고 진한 사랑 이야기가 그리운 분
- 1980년대 한국 사회의 정서와 배창호 감독의 연출 미학이 궁금한 분
- 소심해서, 혹은 너무 사랑해서 오히려 뒤로 물러선 적이 있는 분
느리지만 깊고, 슬프지만 따뜻합니다. 말하지 못한 사랑이 얼마나 오래 사람 안에 남는지를, 이 영화는 카메라 한 컷으로 증명해 보입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