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버스 백미러로 잠깐 본 장면이 있습니다. 앞자리 젊은 여성이 스마트폰을 얼굴에 바짝 대고 쌍꺼풀 필터, 콧대 필터, 피부 밝기 필터를 씌웠다 지웠다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에 이상하게 마음이 쓰렸고, 그 생각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 〈금발이 되고 싶어〉를 보게 됐습니다.
거울 앞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던 나와 조앤의 눈빛
중국계 미국인 소녀 조앤 황은 프롬 퀸이 되고 싶어서, 더 정확히는 또래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어서 인종을 바꾸는 수술을 선택합니다. SNS 필터 앱 '에트노스(Ethnos)'를 통해 백인 외모를 경험한 뒤, 실제 수술로 그 얼굴을 얻으려 하는 이야기입니다. 장르상으로는 다크 코미디와 바디 호러(신체 변형 공포)의 혼합이지만, 저에게는 15년간의 중국 생활이 내내 겹쳐 보였습니다.
2004년 회사 발령으로 가족을 이끌고 산동성 웨이하이로 건너갔을 때, 처음 몇 달은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통역을 거치지 않으면 회의 하나도 제대로 마칠 수 없었고, 시장에 나가면 상인들이 저를 한눈에 '외지인'으로 판별하고 가격을 두 배로 불렀습니다. 한국에서는 늘 다수 안에 있던 제가, 거기서는 그냥 이방인이었습니다. 소수자라는 감각을 몸으로 처음 배운 것이 그때였습니다.
두 아들을 현지 로컬 학교에 보낼 때는 더 선명했습니다. 큰아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첫 달, 집에 돌아와 말이 없어지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쉬는 시간에 중국 아이들이 자기들끼리만 어울리고 자기를 잘 끼워 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데다 겉모습도 달랐으니 자연스럽게 도드라진 것입니다. 저는 그때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중국 아이처럼 될 필요 없다. 네가 한국 사람인 게 부끄러운 게 아니야. 시간이 지나면 그 다름이 네 무기가 된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상처받는 아이 앞에서 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게 말뿐이라는 사실이 참 무력했습니다.
설리 첸이 연기하는 조앤의 눈빛에는 그 무력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또래 백인 아이들을 바라볼 때의 간절함과,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서 마주할 때의 회피가 동시에 들어 있습니다. 대사 없이 어깨를 안으로 말고 시선을 내리까는 것만으로 '이 공간에서 나는 이방인이다'라는 감각을 온몸으로 전달하는 장면은, 수십 마디 설명보다 진합니다. 당신은 그 눈빛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 그 눈빛을 직접 한 적이 있습니까?
예전에 저는 그런 시선을 '소심함'으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달리 보입니다. 그것은 소심함이 아니라 오랫동안 주변의 평가를 내면화한 결과입니다. 조앤이 수술대에 오르는 것은 겁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버텨온 사람이 결국 한 발을 내딛는 것에 가깝습니다.
수행된 백인다움, 카메라가 폭로한 차가운 조명의 진실
맥케나 그레이스가 연기하는 수술 이후의 '조 헌트'는 처음에는 자신감이 넘쳐 보입니다. 걸음걸이가 달라지고,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웃음이 더 빠르게 터져 나옵니다. 그런데 그 자신감이 너무 완벽합니다. 진짜 자신감이란 저렇게 끊임없이 작동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데, 그녀는 마치 기계처럼 '백인다움'을 수행(퍼포먼스, 의식적으로 정체성을 연기하는 행위)합니다. 맥케나 그레이스는 사전 제작 단계에서 만다린어를 익히고 설리 첸과 수십 차례 세션을 거쳐 목소리·몸짓·버릇까지 흡수했다고 합니다. 그 준비 덕분에 두 배우를 교차해서 보다 보면, 외형은 달라졌지만 손이 긴장할 때 손가락을 구부리는 버릇, 당황할 때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가는 순간이 겹쳐 보입니다. 그 겹침이 이 두 사람이 한 존재임을 관객의 몸이 먼저 이해하게 만듭니다.
에이미 왕 감독의 카메라 언어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조앤이 중국인으로서 살아가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유독 인물에 가까이 붙습니다. 모공까지 보일 것 같은 클로즈업(피사체를 가득 채우는 근접 촬영)은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기 위한 선택이면서, 동시에 '이 얼굴을 똑바로 보라'는 감독의 요구입니다. 수술 이후 '조 헌트'의 장면에서는 조명이 바뀝니다. 차갑고 밝은 백색 조명이 쏟아지는데, 그것이 아름다움이 아니라 수술실의 형광등을 연상시키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밝을수록 더 무서운 이유는, 그 빛이 무언가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폭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셜리 송의 음악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조앤의 일상에서는 불완전하고 약간 어긋난 현악기 선율이 깔리다가, 수술 이후에는 지나치게 매끈한 팝 사운드로 전환됩니다. 그 매끈함이 오히려 공허합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다움'의 언어를 쓰면서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인 개념인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저는 10년 전 사기 피해를 당한 후 주식 리딩 업체에 속아 큰돈을 날렸습니다. 돌아보면 그때 저도 '더 빨리, 더 쉽게'를 원했던 것입니다. 조앤이 에트노스 앱을 통해 손쉬운 변화를 꿈꾸는 것과 제가 단기 수익을 꿈꾼 것이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빠른 변신 뒤에는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저는 몸으로 배웠고, 이 영화도 그 진실을 바디 호러라는 장르를 통해 정직하게 보여 줍니다. 당신은 더 빨리 되고 싶다는 마음에 무언가를 무리하게 선택한 적이 있습니까?
정체성의 균열이 남긴 것, 다름은 무기가 된다

영화는 결국 조앤이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은 뒤 무엇을 잃는지를 보여 주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씁니다. 수술 후 거울 앞에 선 조앤의 표정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뭔가를 얻었는데 뭔가를 잃어버린 얼굴. 이것이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동화(同化, 주류 문화에 흡수되어 자신의 원래 정체성을 지우는 과정)는 완성되는 순간 공허해집니다. 목적지에 도달했는데 거기에 '나'가 없는 것입니다.
에이미 왕 감독은 2021년 애틀랜타 스파 총격 사건(아시아계 미국 여성 6명을 포함해 8명이 사망한 혐오 범죄)을 계기로 이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밝혔습니다. 어린 시절 시드니에서 중국계 호주인으로 자라며 "백인이었다면 삶이 더 편했을까"라는 감정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출처: Variety 인터뷰, 링크) 그 감정은 조앤의 수술 결정이 단순한 개인의 욕망이 아니라, 아시아계가 살아온 사회적 압력의 산물임을 설명해 줍니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체성 혼란과 미의 기준에 관한 연구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심리학회(APA)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계 청소년은 백인 중심 미의 기준에 지속적으로 노출될수록 자기 신체 이미지 만족도가 유의미하게 낮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출처: 미국심리학회, 링크) 이 영화는 그 통계 안에 있는 한 소녀의 얼굴을 104분 동안 들여다보게 합니다.
저는 청도에서 귀국한 후 한동안 한국 사회가 낯설었습니다. 15년 동안 이방인으로 살다 돌아왔더니, 이번에는 한국이 낯설었습니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감각. 그 시기에 제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가족과 신앙이었습니다. 2023년 성령을 받고, 2024년 세례를 받으면서 저는 처음으로 '내가 어디 속했는가'보다 '내가 누구인가'를 먼저 생각하게 됐습니다. 조앤이 수술로 얻으려 했던 것을 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훨씬 느리게 찾았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속하기 위해 무언가를 지우고 있습니까? 이 영화는 그 질문을 편안하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외모 지상주의 비판 영화'로만 읽히기 쉽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너머에서 훨씬 오래된 질문을 들었습니다. 나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에이미 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카메라 언어와 배우 연출이 치밀합니다. 설리 첸과 맥케나 그레이스가 교차하며 만들어 내는 '두 개의 몸, 하나의 상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입니다. 다소 과장된 바디 호러 연출이 중반 이후 리듬을 흐트러뜨리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것을 감안하고도 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아시아계 정체성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 이방인으로 살아본 경험이 있는 분, 혹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회피한 적이 있는 분이라면 이 영화가 낯설지 않게 다가올 것입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