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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 포츈

    새벽 첫차를 몰고 나가다 보면,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피곤한 얼굴로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버스에 오르는 분들. 저는 그 얼굴들을 매일 바라보며 운전대를 잡습니다. 《굿 포츈》을 보고 나서, 그 새벽 얼굴들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천사도 못 구한 N잡러의 현실

    영화 속 아지(아지즈 안사리)는 N잡러입니다. 몇 개의 일을 동시에 뛰면서도 차 안에서 노숙하는 삶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천사 가브리엘(키아누 리브스)은 그런 아지를 돕기 위해 금수저 벤처 투자자 제프(세스 로건)와 삶을 통째로 맞바꿔줍니다. 선한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엉망이 됩니다.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두 사람 모두 불행합니다. 가브리엘은 결국 날개를 반납하고 인간으로 강등당합니다.

    저도 한때 비슷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10년 전 사기를 당하고 전부 잃었을 때, 쿠팡 물류센터 야간 알바와 배민 배달을 뛰면서 '이 상황만 벗어나면 달라질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환경이 조금씩 나아져도, 머릿속의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더군요. 중국 청도에 주재원으로 나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환경이 바뀌면 인생도 바뀔 줄 알았는데, 외로움은 외로움이고 불안은 불안이었습니다. 환경은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긴 세월 동안 몸으로 배웠습니다. 영화가 말하는 것도 정확히 그겁니다.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후광도 날갯짓도 없이, 조용하고 담담한 눈빛 하나로 천사임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아지의 고단한 일상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그의 눈에는 연민과 당혹감이 동시에 담겨 있었는데,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는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버스를 오래 몰면서 수많은 승객의 표정을 읽어온 제 눈에도, 그 눈빛은 단번에 읽혔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누군가를 도우려다 오히려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든 경험이 있으신가요?

    웃기는데 씁쓸한 그 감정의 정체

    이 영화는 블랙 코미디(black comedy, 비극적 현실을 웃음으로 포장한 장르)입니다. 웃긴데 어딘가 씁쓸하고, 씁쓸한데 또 웃깁니다. 그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자본주의(capitalism, 자본이 생산과 분배를 지배하는 경제 체제) 구조 안에서 두 사람의 처지를 맞바꿔도, 구조 자체가 만들어내는 불안과 소외감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돈이 생기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가난을 벗어나면 다 해결될 것 같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이 영화의 씁쓸함은 거기서 옵니다. 웃음은 표면이고, 그 아래에 구조적 모순(structural contradiction, 사회 시스템 자체가 만들어내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이 깔려 있습니다.

    세스 로건의 연기도 이 지점을 잘 표현했습니다. 제프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나쁜 구조를 자연스럽게 유지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웃음은 항상 0.5초 늦게 나옵니다. 그 미묘한 타이밍이 '진심이 아닌 웃음', 즉 시스템의 얼굴을 표현하는 영리한 연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열심히 살아도 제자리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이 영화 속 씁쓸함이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아지즈 안사리가 직접 연기한 아지의 몸짓도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어깨는 항상 약간 웅크려져 있고, 걸음걸이는 빠르지만 방향이 없어 보이는 느낌. 에너지는 있는데 희망의 방향을 잃어버린 움직임이었습니다. 반면 돈과 지위가 생긴 뒤에는 걸음이 느려지고 눈빛이 오히려 흐릿해집니다. 이 대비를 세밀한 속도 조절만으로 표현해 낸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안사리가 직접 설계한 블랙 코미디

    아지즈 안사리는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터 오브 논(Master of None)〉으로 에미상과 골든글로브를 수상하며 작가적 역량을 인정받은 인물입니다. 이번 《굿 포츈》은 그의 장편 감독 데뷔작입니다. 단순한 웃음을 넘어 현대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것이 그의 특기인데, 이 영화에서도 그 감각이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연출 면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공간 대비(spatial contrast, 인물의 처지를 공간의 차이로 시각화하는 연출 기법)였습니다. 아지가 좁은 차 안에서 잠드는 장면과, 제프의 넓고 화려한 공간이 교차될 때, 카메라는 감정적 과장 없이 담담하게 두 공간을 같은 거리감으로 담아냅니다. 불쌍하게 보여주거나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습니다. 그 냉정한 시선이 오히려 관객에게 더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게 정상인가?'

    사운드 디자인(sound design, 영화의 분위기를 만드는 음향 설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지의 장면에서는 도시 소음이 날 것 그대로 들어오고, 제프의 공간에서는 그 소음이 깔끔하게 차단됩니다. 같은 도시인데 다른 세계입니다. 돈이 소음까지 걸러낸다는 것을, 대사 없이 소리만으로 표현해 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방식의 연출이 직접적인 메시지 전달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요즘 저는 버스 운전과 함께 보험설계사 일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게 쉽지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것이 저에게는 맞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아지처럼 환경이 한 번에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굿 포츈》을 보고 나서 그 생각이 더 단단해졌습니다.

    이 영화는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지쳐있는 분, 열심히 사는데 이상하게 제자리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시는 분, 그리고 블랙 코미디 특유의 씁쓸한 웃음을 즐기시는 분께 권해드립니다. 화끈하게 통쾌한 영화는 아닙니다. 그러나 한참 지나서도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는 영화입니다. 웃기고 씁쓸하고, 씁쓸한데 또 웃깁니다. 그 감정 자체가 이 영화의 완성입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