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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당도 영화속에서

    버스 운행을 마치고 들어와 유튜브를 뒤적이다 예고편을 봤습니다. 뇌사 상태의 아버지를 두고 가짜 장례식을 치른다는 설정이 어이없으면서도 묘하게 눈길을 잡았고, 그게 전부였습니다. 88분짜리 짧은 영화였지만 보는 내내 가슴이 꽤 무거웠습니다.

    절박함이 만든 가짜 장례식장 안으로

    선영(강말금)은 간호사입니다. 자기가 근무하는 병원에 뇌사 상태의 아버지를 입원시켜 직접 돌봅니다. 의절했던 남동생 일회(봉태규)는 사채업자에게 쫓기면서도 아들 의대 등록금 걱정을 먼저 합니다. 효연(장리우)이 실수로 부고 문자를 보내면서 거짓말의 눈덩이가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부유한 고모가 장례식에 오면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 빚을 갚을 수 있다는 기대. 두 남매는 "아주 조금 이른 장례식"을 치르기로 합니다.

    줄거리만 보면 블랙 코미디(비극적 상황을 웃음으로 뒤집는 장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웃음보다 무게감이 더 크게 남는 영화입니다. 절박함이 사람을 어디까지 몰아가는지, 이 영화는 과장 없이 담담하게 보여 줍니다.

    저도 10년 전 사기를 당하고 나서 한동안 비슷한 처지였습니다. 빚쟁이에게 쫓기진 않았지만 가진 것도 없고 앞길도 보이지 않던 그 시절, 두 아들한테 미안해서 눈을 제대로 못 마주쳤습니다. 쿠팡 새벽 배송 뛰고 배달의민족 앱 켜고 오토바이 몰던 그 겨울, 단 한 번만 숨통이 트이는 기회가 왔으면 싶었습니다. 선영과 일회가 찾아낸 "기회"가 가짜 장례식이라는 게 웃기면서도 씁쓸했던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독자분들은 가장 궁지에 몰렸던 순간, 어떤 선택을 떠올리셨습니까?

    강말금 배우의 선영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인물입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단련된 간호사인데, 바로 그 억누름을 온몸으로 표현합니다. 눈빛은 날카롭게 앞을 향하지만 입술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병상 난간을 쥐었다 놓았다 반복하는 손이 말 못 한 내면을 대신 고백합니다. "나는 괜찮다"라고 말하는 몸이, 실은 전혀 괜찮지 않다는 걸 손이 먼저 알려 주는 것이지요.

    봉태규 배우의 일회는 다른 결의 연기를 보여 줍니다. 항상 출구를 먼저 확인하는 시선, 웃을 때도 입만 웃고 눈은 웃지 않는 표정, 어깨를 웅크리고 걷는 자세. 프로소디(언어 외적 신체 표현)로만 "이 사람은 오래 쫓겨 다녔다"는 이력을 설명합니다. 중국 주재원 시절 사업이 틀어지기 시작할 때 저도 모르게 몸이 그렇게 굳었던 기억이 납니다.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희비극의 온도

    이 영화의 장르를 제작사는 고진감래 가족 희비극이라고 소개합니다. 희비극(tragicomedy)은 비극적 상황을 희극적 방식으로 풀면서 결국 삶의 진실에 닿는 장르입니다. 《고당도》는 그 온도 조절에서 꽤 성공합니다.

    가짜 장례식이 진행될수록 거짓말은 쌓이고, 캐릭터들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집니다. 웃음이 터지는 장면 바로 다음에 숨이 막히는 장면이 배치되는 리듬감이 인상적입니다. 효연(장리우)이 실수를 저지른 뒤 보여 주는 표정 전환, 웃다가 굳고 굳다가 무너지는 그 속도가 이 리듬과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아이러니(irony, 표면과 실제가 반대인 상황)도 영리하게 쓰입니다. 살아 있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위로를 나누고, 오랜 앙금을 풀고, 진심을 꺼냅니다. 죽음을 가장했더니 오히려 진짜 감정이 흘러나오는 역설입니다. 독자분들은 가족끼리 가장 솔직한 대화를 나눈 게 언제였습니까? 위기의 순간이 아니었습니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후반부 전개입니다. 거짓말이 폭로되는 과정이 다소 급하게 마무리되면서 감정선이 충분히 소화되지 못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88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오히려 결말을 조금 서두르게 만들었다는 생각입니다.

    권용재 감독이 택한 일상음의 연출법

    권용재 감독은 장편 데뷔작입니다. 신예답지 않은 절제가 눈에 띕니다. 장례식 장면에 과도한 슬픔 음악을 깔지 않고, 병원 복도 형광등 소리나 문 여닫히는 소리 같은 다이에제틱 사운드(diegetic sound, 영화 속 공간에 실제 존재하는 소리)를 배경으로 씁니다. "이 가족의 위기는 드라마틱한 비극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현실"이라는 선언입니다.

    카메라는 인물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하지 않습니다. 대신 중간 거리에서 인물과 공간을 함께 담습니다. 관객을 드라마 속으로 끌어당기기보다 살짝 바깥에서 관찰하게 만드는 방식, 즉 브레히트적 거리두기(Brechtian distancing, 감정 이입 대신 냉정한 관찰을 유도하는 연출)에 가깝습니다. 덕분에 관객은 울기보다 생각하게 됩니다.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하고.

    이 선택이 좋은 이유는 관객에게 판단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선영과 일회의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를 영화는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왜 그 선택에 이르렀는지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보여 줄 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제가 깨달은 것과 비슷합니다. 사람의 잘못을 심판하기 전에, 그가 어떤 무게를 지고 있었는지 먼저 보는 것. 그게 쉽지 않지만, 이 영화는 그걸 88분 안에 해냅니다.

    추천 대상: 가족 사이의 묵은 감정을 안고 있는 분, 절박한 선택 앞에 서 본 경험이 있는 분, 무거운 주제를 너무 무겁지 않게 보고 싶은 분께 권합니다. 화려한 볼거리보다 인물의 내면을 오래 들여다보는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더욱 잘 맞을 것입니다.

     절제된 연출과 배우들의 진중한 연기는 충분히 값어치가 있습니다. 다만 후반부가 조금 더 호흡을 갖췄다면 별 하나를 더 드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