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4시 반, 버스 차고지에서 출발 준비를 하며 습관처럼 핸드폰 스크롤을 내리다가 그 제목이 눈에 걸렸습니다. 〈가능한 사랑〉. 딱 네 글자인데 이상하게 오래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사랑'이 아니라 '가능한 사랑'이라는 데 뭔가가 있다 싶었어요. 사랑 앞에 '가능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는 건, 그게 늘 자연스럽거나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어떤 조건 속에서, 어떤 상처를 지나서, 어떤 시간을 버텨낸 뒤에야 겨우 가능해지는 사랑. 저는 그 말이 제 이야기 같아서 한동안 핸드폰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이창동이라는 이름 앞에서 멈추게 되는 이유
저는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이 아닙니다. 버스 운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허리 디스크 때문에 자리에 앉는 것조차 버거운 날이 많으니까요. 보험 투잡까지 하고 나면 저녁 시간이 온전히 남는 날이 드뭅니다. 그런데도 이창동 감독의 이름 석 자가 걸린 소식이 뜨면 자동으로 눈이 멈춥니다. 그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단 한 번도 제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창동 감독은 국어 교사로 시작해서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고, 1997년 〈초록물고기〉로 영화에 뛰어든 분입니다. 한 우물만 파지 않고 자기 길을 구불구불 개척해 온 사람. 저도 중국 주재원 8년, MRO 사업 6년, 사기 피해 이후 쿠팡·배민 알바, 그리고 지금의 시내버스 운전기사에 보험 투잡까지 남들이 보면 참 뜬금없이 이어진 인생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분의 이력에 묘한 동질감을 느껴왔습니다.
제가 이창동 감독 영화를 처음 제대로 본 건 중국에서 주재원 시절이었습니다. 15년 타지 생활 중에 한국 영화 DVD를 구해다 숙소에서 혼자 보는 것이 거의 유일한 낙이었어요. 그때 〈밀양〉을 봤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많이 울었습니다. 신애(전도연)가 하나님을 붙들고 싶은데 자꾸 벽에 막히는 그 장면들이, 당시 타지에서 혼자 버티던 제 마음과 묘하게 겹쳤거든요. 믿고 싶은데 믿기 어려운, 그 안간힘 같은 게 화면 속에 고스란히 있었습니다. 〈박하사탕〉의 영호가 "나 돌아갈래!"를 외치는 장면도 잊을 수가 없어요. 10년 전 사기를 당하고 모든 게 무너진 직후, 혼자 차 안에서 펑펑 울던 제 모습과 그 장면이 정확히 겹쳤습니다. 당신은 혹시 영화를 보다가 스크린 속 인물이 자기 자신처럼 느껴진 순간이 있으셨습니까?
이창동 감독의 영화 속 인물들은 언제나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화려하지 않고, 영웅적이지 않으며, 때로는 한없이 무너집니다. 작가주의(Auteur Cinema, 감독 개인의 세계관이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영화 방식) 특유의 절제된 연출, 롱테이크(Long Take, 편집 없이 길게 이어지는 장면 촬영 기법)로 담아낸 평범한 얼굴들, 그 안에 담긴 아주 복잡한 감정들. 〈시〉에서 미자 할머니가 시를 배우기 시작하는 그 움직임이, 〈버닝〉에서 종수가 허무와 분노 사이를 떠도는 그 시선이 — 전부 제 어딘가를 건드렸습니다. 그래서 이번 〈가능한 사랑〉 소식에도 차고지 새벽바람맞으며 한참을 읽었던 겁니다.
전도연과 설경구, 그 조합이 제게 말을 거는 방식
〈가능한 사랑〉의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 조합이면 이창동 감독이 정말 오래 고민했겠구나"였습니다. 전도연과 설경구, 국내 정상급 배우 두 분이 각각 미옥과 호석이라는 부부로 만난다는 것이니까요.
전도연 배우는 이미 〈밀양〉에서 이창동 감독과 함께 2007년 칸영화제 여우주연상(Cannes Best Actress Award,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칸에서 주는 여우주연상)을 받은 분입니다. 한국 배우 최초였지요. 그 연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다 아실 겁니다. 대사 한마디 없이 눈빛 하나로 관객의 가슴을 후벼 파는 배우. 이번에 맡은 '미옥'이라는 인물이 어떤 상처를 안고 있는지는 아직 공개된 바가 없지만, 저는 이창동 감독의 여성 인물들이 대체로 상처를 안고 있으면서도 그 상처에 완전히 잠식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캐릭터라는 걸 알기에, 미옥도 그런 사람일 거라고 짐작합니다.
설경구 배우가 맡은 '호석'은 미옥의 남편이라는 가장 가깝고도 먼 존재일 겁니다. 사실 부부란 게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인데, 어느 순간부터 제일 말을 못 하게 되는 사람이 되기도 하거든요. 저는 아내와 26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1999년에 아내가 위암 수술을 받았고, 완치됐습니다. 사기를 당하고 제가 바닥을 찍었을 때 아내가 저를 원망했다면 이해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원망 대신 침묵으로 옆에 있어줬어요. 그 침묵이 말보다 무겁게 저를 붙들었습니다.** 사랑이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더라고요. 새벽에 밥을 차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 있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사랑이었습니다.
호석과 미옥 사이에는 아마도 오랜 시간이 쌓여 있을 겁니다. 그 시간 속에 사랑이 있고, 상처가 있고, 무뎌짐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서로를 보게 되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저는 기대합니다. 여러분은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언제 하셨습니까?
미래시제(Futurity,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다루는 서술 방식)로 이야기해야 하는 게 아쉽지만,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이야기를 구성하는 사건 배치 방식)를 과감하게 열어두고 관객이 스스로 채우게 만드는 게 이창동 감독 연출의 핵심입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 예술을 통해 감정이 정화되는 경험)를 극적으로 주는 대신,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방식. 그게 때로는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진짜 삶을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이창동 감독의 전작들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은 분들은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에서 필모그래피 전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가능한 사랑'이라는 제목이 제 삶에 던진 질문
저는 2025년 12월 21일에 금연을 시작했습니다. 정확히 그 날짜를 기억하는 건, 하나님께 이날부터 끊겠다고 기도하고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담배를 수십 년 피워온 사람이 끊는다는 게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닌 거 아시지요? 사기 피해 이후 허리 디스크 통증, 고혈압, 고지혈증, 한쪽 귀 난청에 발바닥 저림까지 몸이 이 모양인데 담배 연기를 붙들고 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그런데 혼자 힘으로는 안 되더라고요. 신앙의 힘을 빌렸습니다.
사랑도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사람이 혼자서 완전한 사랑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가능한 사랑이란, 어쩌면 상대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고, 시간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고,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일 겁니다. 저는 사기당하고 쿠팡 물류센터에서 밤새 박스를 나를 때, 배민 배달 뛰다 비를 흠뻑 맞을 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버스 운전 자격증을 따러 다닐 때 아내가 저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그 시간들을 버텼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랑이 가능했던 건 아내의 선택이었고, 저는 그 선택을 매일 빚지고 살고 있습니다.
이창동 감독이 이번 작품에서 어떤 사랑의 형태를 카메라에 담아낼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런데 제목 하나만으로도 이미 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랑이 언제나 쉽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 조건과 상처와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겨우 그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는 것이라는 것. 여러분의 삶 안에 지금 가능해지고 있는 사랑이 있습니까? 그 사랑에 충분히 고마워하고 계십니다